오늘 KBS에 다녀왔습니다. 보고 느낀 것을 그대로 적어보려고 합니다. 약 200명 정도가 모였습니다. 정연주 사장이 긴급 체포된 날, 왜 체포되어야 하는지, 왜 긴급이어야 하는지 전혀 납득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의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 것이 안타깝다는 생각이 듭니다. 정부의 방송장악 움직임은 자신들만의 법 논리로 국민을 무시하며 희희낙락 진행되고 있지만, 당연히 분노해야 할 분노가 보이지 않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1990년과 2008년 꼭 닮은 정부
KBS 정연주 사장 해임 과정을 보면 18년전 노태우 정권시절과 하나도 다르지 않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감사원의 면직 권고, 어용 이사회의 면직 제청, 그리고 대통령의 해임 순으로 진행된 것이 또 같습니다. 이를 위해 18년전 KBS를 짓밟았던 경찰이 18년 만에 KBS로 들어갔던 것까지 어쩌면 이렇게 또같이 따라하는지, 이명박 정부가 얼마나 상상력이 부족한 정부인지를 다시 한 번 보여주었습니다.
KBS를 지킬 수 없는 세 가지 이유
KBS를 지킬 수 있는 힘은 세 가지에서 나올 수 있습니다. KBS 내부 조직, 야당 등 정치권의 강력한 대응, 그리고 국민들의 힘입니다.
일주일 정도 KBS사태를 돌아보면서 KBS지키기가 참 어려운 싸움임을 느끼게 됩니다.
첫 번째 이유, KBS 노조에게는 처음부터 전투력이 없었다.
노조가 막으려고 한다면 가장 효과적으로 막을 수 있습니다. KBS는 YTN과는 달라서 직원들이 많습니다. 5000여명이나 됩니다. 마음만 먹으며 조직적으로 지켜내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18년전 노태우 정권에 맞서 싸웠던 투지 정도면 충분히 막아낼 수 있습니다. 제작 거부까지 각오한다면 충분히 이길 수 있는 싸움입니다. 그런데 노조는 싸울 생각이 없어 보입니다. 지금까지 18년만의 경찰 투입과 사장 해임, 그리고 이명박의 해임서명이 이어지는 동안 달랑 성명서를 하나 발표한게 다입니다. 아무것도 한 것이 없습니다. 아, 삭발도 했군요. KBS 사태가 진행되는 동안 노조의 비상식적인 행동으로 이미 KBS는 노조집행부가 언론노조에서 제명된 사고노조입니다. 현재 반 이명박 전선을 확고히 하고 있는 KBS사원행동은 PD연합을 중심으로 따로 조직된 것입니다. 그 수가 많지 않습니다. 노조의 이런 태도가 계속되는 한, KBS를 지킬 수 있는 한 가장 유효한 수단 하나를 아예 잃어버린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하는 시늉은 하겠지만 지금 당장 특단의 행동이 없는 한 그저 시늉일 뿐입니다.
두 번째 이유, 어리버리 야당, 특별히 민주당 때문입니다.
KBS앞에는 오늘도 여전히 최문순 의원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이사회의 정연주 사장 면직 제청이 있던 날, 최 의원의 눈물과 글들을 보면 정말 그 마음을 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MBC사장을 지냈기 때문에 더 잘 알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최 의원이 성유보 위원장과 정연주 사장에게 '지켜드리지 못해 죄송하다'며 쓴 글은 진심일 것입니다. 그런데 민주당은 도저히 믿지 못할 정당입니다. 뻔히 이명박 대통령이 해임안에 서명을 한다고 공표한 날, 원구성에 조건 없는 합의를 해 버렸습니다. 정말 대책 없고 정신없는 정당임을 다시 한 번 드러냈습니다. 그러면서도 말로는 KBS를 지키겠다고 합니다. 공영방송을 지키는 일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합니다. 오늘 집회에 최문순 의원 외에 달랑 의원 한 명 나왔습니다. 현재 의석상 민주당의 역할은 없습니다. 국민들과 호흡하며 국민의 입장을 원내외에서 적절히 대변해야 합니다. 그런데도 이렇게 중요한 날, 입으로는 투쟁을 외치면서 몸으로는 이명박 대통령의 정연주 사장 해임에 정당성을 부여한 꼴이 되어 버렸습니다. 원내에 들어가는 것이 맞습니다. 그런데 그 타이밍이 절묘하게 KBS를 그리고 국민의 뒤통수를 갈겨 버렸습니다.
세 번째 이유, 국민들에게 전략이 없습니다.
이제 하나 남은 것이 국민입니다. 국민들이 정말 원한다면 막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현장은 조금 회의적입니다. KBS에 모이지 않는 한, 이명박은 아무런 느낌도 가지지 않을 겁니다. 국민들이 KBS를 소중히 여긴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매일 KBS에 집중해야 합니다. 그런데 시민들은 여전히 시청, 광화문, 종각을 고집합니다. 촛불이 진화한다면 현실적으로 진화했으면 합니다. 가장 필요한 곳에 집중하는 것이 전략입니다. 그런데 지금 그런 전략이 없습니다.
KBS를 꼭 지켜야 하는 이유
KBS를 꼭 지켜야 하나, 생각을 해보니 솔직히 꼭 지키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앞으로 조금 더 우매해 지려고 한다면 또 그렇게 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건 아니잖아요. 이명박 정부가 원하는 대로 다 허용하면서 이렇게 사는 건 아니란 생각은 버려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가지고 있던 상대적으로 옳다고 여겨지는 가치관들 하나씩 잃어버리고 그저 버티면서 사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그래서 지켜야 할 것들은 지키고 싶은 거구요. 저는 경제 망가지는 것보다 우리가 옳게 사는 길을 잃게 될까봐 그게 더 걱정입니다. 모두 다 저항하며 살것 같지만 잊고 적당히 타협하며 살게 될 사람들이 훨씬 많으니까요.
KBS앞에 촛불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당장 KBS에 집중하고 또 필요하면 YTN이던 다른 곳이던 그곳에서 들면 됩니다. 굳이 광화문에 집중할 이유가 없습니다. KBS앞은 좁다고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좁으면 여의도를 다 이용하면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