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사람들 만나서 제일 꺼려하는 화제가 정치와 종교에 관련된 것들입니다. 이 문제들은 차분한 대화가 되기 어렵다는 걸 체험을 통해 알기 때문입니다. 평소 평온했던 관계가 정치와 종교가 개입되기 시작하면 산산이 무너집니다. 겉으로 보기에 아주 얌전하고 품행이 바르던 사람이 감정적 공격을 하고 욕설을 내뱉고 바닥을 드러내는 거 보기 싫어서라도 안합니다. 혼탁했던 우리 현대사의 궤적이 고스란히 내면화된 게 정치고 또 그런 사회가 빚어내는 황량한 풍경 중의 하나가 종교인 거 같습니다. 그런 점에서 교육감 선거는 말 붙이기가 비교적 쉬웠습니다.
가끔 일 끝나고 늦은 시간에 집에 오다 출출하면 ‘정통 독일 수제소세지’를 한다는 호프집에 들러 출출함을 때우곤 합니다. 물론 ‘정통독일수제소시지’를 먹어본 일은 없습니다. 그 집 쥔장 분이 손이크고 발이 아주 넓은 분이라 맛은 별로지만 안주를 무지 많이 주고 아는 사람도 많습니다. 골뱅이 한 번 시켰다가 죽는 줄 알았습니다. 아들이 양평에서 군대 근무를 하는데 키가 185에 아주 잘생겼다고 갈 때마다 자랑을 합니다. 모델이 꿈이라더군요. 내년 3월에 전역하는데 제대하고 어떻게 할지 계획까지 세워 놨다고 합니다. 며칠 전부터 교육감 선거 얘기를 해서 운을 띄우긴 했는데 선입견인지 몰라도 고향이 경북 김천 분이고 해서 막상 말하기가 꺼려지더군요. 어제 조심스럽게 얘기를 꺼냈더니 누굴 찍을지 이미 결정했답니다. 투표 안내 책자를 뒤적이는 걸 보고 공정택을 뽑아낼 줄 알았는데 주경복 얼굴을 디밀더군요. 순간 눈을 의심하며 의아한 표정을 짓고 있는 나에게 군에 있는 아들이 선거때만 되면 전화해서 꼭 투표하라고 한답니다. 이번에도 주경복을 찍으라고 친히 지령을 내렸다고 하더군요. 아주 생각이 바르고 똑똑한 아드님이시네요. 자랑할만 하십니다. 아드님이 꼭 성공할 겁니다. “우리 아들은 명박이도 안찍었어요.” 눼.
투표를 종용할 때는 전화나 문자보다는 발품을 팔고 직접 만나서 얘기하는 게 좋습니다. 자주 왕래하고 연락하는 사이라면 몰라도 평소 연락도 안하다가 이럴 때 전화하고 문자 보내면 욕먹습니다. 만나기 어려운 사람들한테는 전화도 하고 문자도 보내고 했지만 주로 직접만나고 다녔습니다. 그 사람들이 선거 당일 날 움직일지 어떨지 모르겠지만 참 많은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사람들 만나는 게 그리고 선거 얘기하는 게 귀찮고 힘들 때마다 아스팔트 위에 초와 초코파이를 태우며 그 작은 불 꽃 앞에서 얼어 죽지는 않아야 될 거 아니냐고 조금은 불쌍하게 말하던 우리예리님이 생각나 그만 둘 수는 없었습니다. 아마 그 모습을 봤다면 누구나 저처럼 했을 겁니다.
지난 주말에는 아예 작정을 하고 동창넘들이 동네에 눌러 앉아 하는 헬스장, 피씨방, 노래방, 당구장, 태권도장, 식당, 금은방, 주점, 심지어 조직에 몸담았던 놈이 하는 성인오락실(이 자식도 애가 있으니까요), 목사로 있는 교회 까지 찾아다니고 옛 날 같이 공차던 넘들이 아직도 나간다는 조기축구회까지 얼굴을 디밀었습니다. 공차본지가 15년은 넘었는데. 연습할 때는 제 몸상태가 별로니까 슬슬 같이 뛰어주고 정작 시합에서는 그냥 심판만 대충 봐주다 왔습니다. 발이 무척 근질거리더군요. 시켜줘봐야 사람 하나 잡든지 개발질 하겠지만. 다들 이 깡패같은 생퀴가 왠일이지 하는 뜨악한 표정이더군요. 평소 곱슬머리에 잘 웃지도 않아 냉정하고 차갑게 보인다는 말을 듣는데 내 딴에는 만면 가득 최대한 온화한 미소를 띠고 썰을 풀었습니다. 그래봐야 악어가 웃는 거처럼 보였겠지만. 예비군훈련이나 민방위훈련이라도 하면 모아놓고 썰을 풀 텐데 이제 것 두 다 끝났으니 찾아다니는 수밖에요.
교복, 체육복, 미술도구 비리, 진로지도 할 때 교무실 자기 책상을 열어놓고 노골적으로 촌지를 요구하던 담임 얘기, 아예 가정방문을 핑계로 촌지구걸을 다니던 추한 기억들, 아이들을 등수로만 판별하고 인식하던 교사들, 땡볕 아래서 아이들에게 총(비록 고무지만)을 쥐어주고 사람 죽이는 훈련을 시키던 지겨웠던 교련, 군대열병식을 흉내내던 월요일의 전체 조회시간, 변태적인 체벌을 당하던 추억들, 반에서 10등 이상만 거르고 나머지는 다 버리던 교실 풍경, 야자 땡땡이 , 그러다 아이들 교육에 관해 말이 나오고 자연스럽게 교육감 선거로 넘어가고 그다지 정치색이 없는 선거라서 그런지 얘기하기가 수월했습니다. 적어도 동창 아이들하고 이야기 할 때만은 전교조는 별 문제가 안됐습니다.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차별 없이 대해줬고 가장 존경할만한 기억으로 남는 분들이 나중에 전교조 가입한 선생님들이고 그랬으니까요. 그 분들 때문에 오히려 도움이 됐습니다. 물론 평소 저의 온화한 인간성도 도움이 됐을 겁니다. 도대체 몇이나 투표장에 갈지 모르겠지만 왜 주경복이어야 하는지는 확실하게 심어놓고 왔다는 생각은 듭니다. 모르지요. 앞에서는 그래그래하다가 정작 투표장에서 배신을 때릴지도.
그런데 일부러 이넘들이 잔머리를 굴렸는지 30일을 전후해서 휴가계획이 있는 사람들이 많더라구요.
촛불집회에 참석할 정도로 열정적이라면 그 분들은 아마도 투표장에 꼭 갈겁니다. 열성적인 조중동 독자이거나 선거때마다 한나라당에 묻지마 지지를 보내는 사람들은 포기합시다. 문제는 평소에 정치나 시사문제에 무관심한 사람들입니다. 휴가철도 끼어 있고 그 사람들을 얼마나 투표장으로 유인하느냐가 관건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전화하고 문자보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될 수 있으면 개인적으로 만나서 얼마나 절박한 문제인지 설득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술값이라든지 밥값같은 비용은 좀 들겠지만.
by 안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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