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경복 교수를 만난 이유는 두 가지이다. 한 가지는 교육감 선거와 그 이후의 이야기, 즉 기능적인 이야기를 듣고 싶었고, 다른 한 가지는 교육에 대한 동질감을 가진 선배와의 만남, 즉 마음의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기 때문이다.
주경복은 투사가 아니다
주경복 교수는 강원도 원주 출신이다. 지금은 인구 30만의 도시이지만, 당시만 해도 10만을 헤아렸을 것이다. 주 교수의 얼굴에는 강원도 사람의 순박함이 그래도 묻어 있다. 선거가 시작될 때, 주 교수의 프로필을 보고 당연히 투사의 이미지를 가졌으려니 생각했었다. 민주화를 위한 교수협의회(민교협) 회장도 그렇고, 보수 신문이 주장하는 전교조 후보 이미지도 그렇다. 그런데 멀리서 처음 본 주 교수는 내민 손을 시민들이 보지 못하고 지나치기만 해도 쑥스러워 어쩔 줄 몰라 하는 미소가 편안한 한 소시민이었다.
▶ 프로필만 보면 투사의 이미지가 강하게 난다. 그런데 실제 이미지가 많이 다른 것 같다. 스스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일반 시민들을 투사로 만들던 시기가 있었다. 86년 말 귀국하고, 87년 교수 임용이 되었다. 그리고 이어서 격동의 시절이 기다리고 있었다. 당시 의식 있는 교수들은 단지 양심의 소리대로 행동했다. 그러다 보니 성명에 참여하고, 각 기관의 리스트에 이름이 올라가고, 모일 곳이 있으면 모였고 시위나 농성이 필요하면 했던 것이다. 민교협 교수들이 대부분 순수한 사람들이 많다. 순수한 사람들이기에 사회적 지위와 환경에도 불구하고, 어려움 속에서도 자기 이익이 아닌 공동의 이익을 위해 싸울 수 있었을 것이다.
이번 교육감 선거는 진보진영의 새로운 실험
서울시 교육감 선거는 마지막까지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상황으로 흘렀다. 진보와 보수 대결구도로 전개되면서 온갖 흑색선전이 난무하는 선거로 치러졌다. 그 중 대미을 장식한 것이 ‘전교조 후보론’이다. 거리에는 ‘전교조에 휘둘리면 교육이 망합니다’, ‘전교조에 우리 아이들을 맡길 수 없습니다’ 등의 플래카드가 걸렸고, 막판 효과를 발휘했다. 결과는 공정택 현 교육감의 신승으로 끝이 났다.
▶ 선거가 박빙으로 끝이 났다. 800만 유권자 중 2만여 표차라면 많은 아쉬움이 남을텐데, 선거에 대한 소회를 말해 달라.
소중한 경험이었다. 이번 선거는 진보진영의 새로운 실험이었다. 각 정당이나 사회단체의 틀을 넘어 진보 진영이 선거에서 하나로 뭉쳤던 유례가 없다. 그것만으로도 소중한 자산이라고 생각한다.
▶ 선거운동만 놓고 본다면 실패한 선거였다는 보여진다. 빠른 결정과 선거운동을 통합할 만한 조직적 역량이 부족한 것으로 보였다. 그런 이유 중 하나가 진보 세력의 결집이라는 물리적 어려움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일면 맞는 말이기도 하다. 선거 초반에는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로 움직일 수 있었다. 짧은 선거 기간에서 초반의 어려움에 대한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진보진영이 함께 하는 틀 자체가 새로운 시도라는 측면에서 훨씬 큰 가치를 갖는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소중한 자산을 어떻게 끌어갈 것인지를 고민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선거, 그리고 언론
▶ 현장에서 직접 뛰어보니 참 아쉬운 점이 많아 보인다. 특히 방송의 관심이 현저하게 떨어졌다. 유일하게 한 번 있었던 후보 초청 방송토론회가 평일 오후 2시에 열렸다는 것은 방송이 얼마나 형식적으로 교육감 선거를 다루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선거를 치르면서 방송이나 언론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이번 선거는 시간과의 싸움이었다. 시간이 턱 없이 부족했다. 인지도가 없는 사람이 처음 선거를 치르기에는 너무 많은 문제점들이 산재해 있다. 또한 서울시교육감 선거가 지역선거라는 점에서 방송의 홍보가 거의 없었다고 봐도 될 것이다. 전국방송이기에 지역선거를 자주 다루는 것이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것 을 이해하더라도 전국적으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서울시교육감선거에 너무 소홀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그에 비해 보수신문들의 활약은 눈부셨다. 모 신문은 나 한 사람에 대해 선거운동 기간 동안 세 번의 악의적인 사설을 쓰기도 했다.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한지 기가 찰 노릇이다. 짧은 선거운동 기간에 유권자의 관심을 일으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각 후보나 선관위뿐 아니라 사회의 공공성을 지켜야 할 방송과 언론의 역할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방송은 제 역할을 전혀 하지 못했고, 일부 신문은 그들만의 리그에 전념했다. 이것이 교육감 선거를 치르면서 보게 된 우리 언론의 현실이다.
선거로 본 진보, 중도, 보수의 자리
▶ 치열한 접전을 벌였지만 선거에서 졌다. 선거에서 진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먼저 선거운동에 서툴렀다. 그것이 가장 큰 이유가 될 것이다.
▶ 이번 선거는 진보와 보수의 틀 안에서 이념대결로 진행된 측면이 트다. 그에 대한 평가는 어떻게 내리고 있는가?
선거 구도의 관점에서만 본다면 보수가 이기는 구조가 만들어져 있다. 여론조사나 사람들을 만나보면 진보 성향의 시민들이 더 많은 것 같다. 이는 현 정부의 실정과 부당함을 바라보는 눈이 그대로 투영된 것이다. 그런데 진보성향의 시민들은 이미 여러 번의 패배로 인한 패배주의에 빠져 있다. 참여가 저조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중도 성향을 가진 사람들은 현 사회의 이슈나 현안에 무지한 경우가 많다. 이런 중도 성향의 시민들을 깨우고 투표장으로 불러들이기에는 선거에 너무 많은 제약과 한계가 있다. 이에 반해 보수 성향의 시민들은 진보진영의 전유물이었던 NGO활동 등을 통해 조직력이 탄탄해졌다. 이번 선거에서도 잘 드러났다.
▶ 진보 진영의 패배주의가 어느 정도 영향을 끼쳤다는 것인데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는 말이 있다. 진보 세력이 교육에 대해 경험적으로 능력을 보여줄 기회가 없었다. 처음에는 비판과 더불어 대안을 제시하는데 역량이 부족했다. 하지만 이제 대안제시가 가능한 세대에 와서는 아직까지 그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이번 교육감 선거가 대안을 보여 줄 기회였지만 결국 실패한 것이다. 결국 그 첫 번째 기회를 얻지 못한 가장 큰 책임은 나에게 있다. 지지해 주신 많은 분들을 실망시켜 정말 죄송하다.
(선거 후 후보 홈페이지에 올린 낙선인사)
우리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상상력’
▶ 대학에서 학생들을 대하다보면, 똑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개성 있고 일면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한 학생들이 수업 과정에서 생각하는 것, 만들어내는 것에는 거의 차이가 없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한 마디로 상상력이 부족하다. 예민한 감수성이 모두 증발된 상태에서 학생들이 대학으로 들어온다. 감수성이 개발될 시기의 아이들은 학습경쟁이라는 과제 외에 어떤 것도 허락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아이들이 대학에서 할 수 있는 것의 한계는 너무 뚜렷하다. 초중고에서 너무 많은 것을 잃어버리는 아이들을 보면 참 안타깝다는 마음을 버릴 수가 없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배우는 것은 생존능력이다. 살기 위해 싸워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당연히 아이들에게 필요한 상상력, 미적 감각 등 그 시간이 아니면 잃어버리게 되는 고급영역들이 황폐화 되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획일화된 학습 요구를 넘어서 상상력과 자율성을 키워주지 않는 이상 고등교육의 성공도 기대할 수 없다.
주경복 교수는 지금의 교육을 스포츠에 비유해 설명한다.
경제상황이 어렵던 시절 스포츠에는 헝그리 정신이라는 것이 있었다. 하지만 요즘은 다르다. 스포츠에도 과학 시스템이 도입되고 다양한 시도들이 이루어지고 있다. 어느 정도 즐기는 스포츠가 가능한 시기가 되었다. 교육도 이렇게 가야한다. 지금 우리 교육이 강조하는 경쟁은 단지 헝그리 정신에 토대를 둔 것이라고 생각한다. 교육만 제자리 걸음이고, 요즘은 그 마저도 다시 후퇴하고 있다.
한국 교육, 바꿀 수 있다
한국 교육을 보면 지레 포기하는 사람이 많다.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팽배하다. 하지만 주경복 교수는 바꿀 수 있다고 단언한다.
▶ 한국 교육은 사회구조적인 문제와 맞물려 해결하기 어려운 구조로 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진보 후보로서 한국교육의 변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교육을 바꾸는 것을 너무 크고 이상적인 것으로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현실은 어려워 보이지만, 그 자체가 시지프스 신화의 바위 덩어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초중고의 문제만으로 풀려고 하면 풀기 어렵다. 부모들의 최종 목표는 대학이기 때문이다. 초중고는 학습권의 평등이 강조된 공교육 강화를 방향으로 잡고, 대학의 시스템을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획일화, 서열화 된 대학 등 고등교육 기관을 직업, 전문기관 확대 등을 통해 복선화, 다양화 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두 가지를 함께 지향해 간다면 한국 교육의 미래가 그리 어둡지 않다고 본다.
2010년 교육감 선거, 주경복 교수의 선택은?
▶ 이번 선거에 나오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개인적 욕심은 전혀 없었다. 진보진영이 교육에 대해 책임 질 시기라고 생각했고, 숙의 결과 최종적으로 나에게 역할이 주어져 따랐을 뿐이다. 교육감 선거에 나오기 위해 개인적으로는 상당히 많은 것을 포기해야 했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그럼에도 교육감 선거에 출마한 것은 시대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였다. 앞으로도 한국 교육이 옳게 가기 위해 어디에서든 최선을 다할 것이다.
▶ 이번 서울시 교육감 선거의 석패와 함께 주경복 교수의 2010년 출마를 예측하는 시각이 많다.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거의 기정사실화 하고 있는 분위기이기도 하다. 어떤 계획을 가지고 계시는지?
지금으로서는 아무 것도 예측할 수 없다. 한국의 상황은 예측 불가능성이 늘 존재한다. 이번 선거에 개인적인 욕심이 없었듯이 앞으로도 마찬가지이다. 혹시라도 기회가 주어진다면 회피하지는 않겠지만, 다음 선거에 내가 먼저 나가겠다고 미리 준비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옳은 교육을 위한 사회적 요구가 어떻게 변화하는지에 따라 흘러가는 것이 좋다고 본다.
▶ 마지막으로 현 교육감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어려운 사회 속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의 의식수준이 그대로 교육에 투영되는 것 같아 안타깝다. 교육을 망치지 않기만 바랄뿐이다. 경쟁만으로는 교육을 세울 수 없다. 아이들에게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공정택 교육감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기 바란다.
마치며
주경복 교수와는 인터뷰를 한 것이 아니다. 그냥 이야기를 나누었다. 두 시간여 이야기를 나누고 돌아서며 ‘참 맑고 순수한 분’이라는 생각이 마음에 남았다. 조금씩 메모해 두었던 것을 인터뷰 기사로 올릴 수 있을까, 나오는 길에 허락을 받았다.
2008년 서울시교육감 선거는 보수진영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다음날부터 공정택 교육감의 입을 타고 쏟아지는 교육의 방향은 한 마디로, ‘경쟁강화, 학교서열화’이다. 선거에는 졌다. 하지만 교육의 주체는 여전히 학생들이고 학부모들이다. 그들의 현명한 판단과 아이들을 위한 옳은 선택을 이제부터라도 믿어보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다.
입술에는 아직도 치열한 전투의 흔적이 남아 있지만, 전혀 패자 같지 않은 편안한 얼굴의 주경복 교수가 했던 첫 마디가 생각난다.
"나는 낙천적입니다. 현실에서는 늘 치열하게 살지만, 마음은 가능성 있는 미래를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