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5 이후 이명박 정부의 강공이 눈에 띄게 탄력을 받고 있군요. 방송도 이미 mb의 강공을 아무런 비판 없이 보도하고 있습니다. 다 넘어간 걸까요?


그렇다고 해서 이명박 정부가 안심하긴 이르죠. 절대 그럴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지금처럼 이명박 정부가 대책 없는 강공에 나설 경우 두 가지 확실한 벽에 봉착하게 됩니다.


첫 번째가 민생의 어려움이 가중된다는 것입니다.


현재 진행되는 경제정책들의 특징을 잘 보면, 서민들에게 혜택을 주는 것은 일시적이거나 이벤트성이 많습니다. 그 반면에 상위계층이나 기업들에게는 법적, 제도적으로 다시 말하면 상당히 안정적인 혜택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는 뻔하죠. 기업과 상위층의 혜택만큼 서민들의 어려움은 늘어 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한은의 금리인상을 두고 정부의 불만이 많습니다. 가장 큰 문제였던 원유가격이 하락하는 데 굳이 뭐하러 금리를 인상해서 경제성장에 제동을 거느냐는 게 이유입니다. 그런데 조금만 생각해봐도 압니다. 한국은행의 존재이유가 물가안정입니다. 그 부분은 한국은행이 최고의 권위를 가지고 있습니다. 정부의 압박을 이기고 금리인상까지 한 것은 그만큼 하반기 물가에 비상이 걸렸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정부와 한은의 판단을 종합해 볼 때 한은이 맞을 가능성이 훨씬 큽니다. 그런데도 정부는 공공요금의 인상을 계획하고 있고, 물가에 미치는 영향은 없을 것이라고 합니다. 참 훌륭하죠?


두 번째가 필연적으로 사회적 반발에 부딪히게 된다는 것입니다.


당장 물가 등 민생의 문제가 아니더라도 정부에서 추진하는 모든 일들이 사회갈등을 유발하는 것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그런 갈등을 해결할 리더십이 이명박 정부에게는 없습니다.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것이 공권력입니다. 그래서 8.15에서 법치에 대한 강조가 다시 한 번 천명된 것입니다.

사회적 갈등을 공권력으로 해결하려 한다면 그 규모와 정도가 커지는 것은 당연합니다. 곳곳에서 일어나는 갈등들이 사회문제화 되고 다시 커다란 반발에 부딪히는 것은 필연적이라는 것이죠.

 

합리적인 합의의 과정이 생략된 정부의 강공이 불러 올 사회적 갈등이 염려되기도 하지만, 이 또한 사회진보의 과정에서 어떻게 해결될지 정신 똑바로 차리고 눈 똑바로 뜨고 지켜 볼 생각입니다.

Posted by 우리예리

건국 60주년(?) 행사를 거창하게 치렀습니다. 광복절은 어디가고 친일적 사고가 그대로 드러난 건국 행사를 하면서 이명박 대통령은 다시 한 번 ‘미래로’라는 구호를 전 국민에게 던졌습니다.

대부분의 방송과 언론이 이명박 대통령의 8.15 행사 후의 행보를 비판 없이 싣고 있습니다. 8.15 행사에서 천명한 것이 뭐 특별한 게 있을까 찾아봤더니 역시 없습니다. 이미 언론 방송장악이 끝난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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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이 이렇게 강공 브라이브를 걸 수 있게 된 것은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이유란 것이 언제든 허물어질 수 있는 것이란 걸,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아니란 걸 유일하게 청기와 사람들만 모르고 있는 듯합니다.

강공 브라이브의 이유와 이명박식 선언의 허와 실을 찾아봅니다.


1. 물리적 수단을 승리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8.15에서 유난히 강조한 것이 법치입니다. 대한민국 대통령에게서 법치란 말이 나올 때의 허무함은 참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그 단어를 썼으니 그대로 보도록 하지요.

바로 며칠 전 대기업 총수와 측근 공무원들에 대해 대거 사면 복권을 단행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쓴 것이 절대 법을 어기는 것을 용서치 않겠다는 겁니다. 이게 앞 다르고 뒤 다르죠? 스스로 생각해도 그럴 것입니다. 그러니 슬쩍 끼워 넣습니다. 지금까지의 것은 용서하지만, 내 임기 동안에는 절대 관용하지 않겠다고 말입니다.


여기에서 삐~~~ 하고 들려오는 숨겨진 말이 있지 않을까요? “이미 검경은 내가 장악했다.” 앞으로 정적들만 제거하는 권력기관들의 현란한 칼춤을 보게 되지 않을까 염려됩니다. 이미 입맛에 맞춰 요리하는 정치 검찰, 권력에만 충성하는 경찰독재의 움직임은 누구나 의식하고 있으니까요.

이명박식 법치는 물리적 수단을 말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물리적 수단의 효용성을 톡톡히 만끽하는 정부는 그 자체를 승리로 규정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2. 지지율 상승은 한 여름 밤의 꿈


지지율이 30%초반 대까지 상승한 모양입니다. 그걸 두고 본격적인 반등으로 착각하거나, 그것만이라도 얼마나 좋으냐는 반응들이 안쓰럽습니다. 참 훌륭합니다, 30%. 그런데 이 지지율이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요? 단지 전통적 지지층의 결집입니다. 한 동안 전통적 지지층의 이탈로 인해 골머리를 앓던 이명박 정부가 한 숨 돌리고 자신감을 찾은 이유입니다.


그런데 이 전통적 지지층이란 결국 필연적으로 대립을 불러 올 지지층이라는 걸 모르는 것 같습니다. 보수 지지층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줄기차게 요구하는 집단입니다. 그 욕구는 결국 민생의 문제와 부딪히게 되어 있습니다. 촛불집회 등의 피로가 쌓여 주춤하는 대다수의 국민들에게 새로운 문제를 야기하게 될 것입니다.

게다가 지금은 올림픽 기간이죠. 국민들이 올림픽 열기에 빠져 지금 정부의 하는 짓을 모른채 지지율 제고에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올림픽이 끝나고 열기가 가라앉으면 어느 정도의 하락은 불가피합니다. 


3. 저탄소 녹색성장시대?


뭐든지 입으로만 하는 이명박식 선언의 백미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지난 6월 온실가스 에너지 안보 및 기후면화에 관한 주요국 회의에서 온실가스 감축 목표조차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못하고 지탄을 받았습니다. 한국은 아직도 온실가스 감축에 있어 개도국 지위를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해 다른 나라로부터 지적을 받기도 했습니다. 이때 정부가 구체적으로 제시하지도 못하면서 2013년 이후 감축은 불가피하다고 보고 녹색성장을 통한 저탄소사회 구현을 목표로 기후변화 대응 종합대책을 세우고 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이것을 그대로 옮겨 선언한 것이 8.15 선언의 저탄소 녹색성장시대의 원년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나오는 정책이라는 것이 겨우 몇 가지 규제조치일거라는 것은 안 봐도 훤합니다. 기본계획도 없이 선언만 해 놓고 폼 내는 것이 눈에 안쓰럽습니다.


저탄소 시대를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이 개발억제입니다. 미안하지만 탄소의 90%는 땅에 묻혀 있습니다. 개발과 함께 올라오는 것입니다. 온갖 규제를 풀고 개발로 경제를 살리려 하는 한, 웃기는 시츄에이션이 되는 거죠. 

녹색성장, 이것처럼 효과 없이 초기투자를 요구하는 것도 없습니다. 이명박 정부의 단기적 경제운용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결국 이명박식의 자신감은 그 이유가 얼마나 허망한지, 얼마나 약한지를 보게 되는 것이지요. 끝까지 지켜보지요.

Posted by 우리예리
잠실 교보문고 카페에서 교육감 후보였던 주경복 건국대 교수를 만났다. 검은색 스트라이프 무늬 티를 입고 카페로 들어서는 주 교수는 언제 선거가 있었냐는 듯 편안해 보였다. 하지만 터진 입술이 아직 아물지 않은 채 남아 있어 치열했던 선거의 흔적을 보는 듯했다.
주경복 교수를 만난 이유는 두 가지이다. 한 가지는 교육감 선거와 그 이후의 이야기, 즉 기능적인 이야기를 듣고 싶었고, 다른 한 가지는 교육에 대한 동질감을 가진 선배와의 만남, 즉 마음의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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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에서 만난 주경복 건국대 교수, 사진 우리예리)


주경복은 투사가 아니다


주경복 교수는 강원도 원주 출신이다. 지금은 인구 30만의 도시이지만, 당시만 해도 10만을 헤아렸을 것이다. 주 교수의 얼굴에는 강원도 사람의 순박함이 그래도 묻어 있다. 선거가 시작될 때, 주 교수의 프로필을 보고 당연히 투사의 이미지를 가졌으려니 생각했었다. 민주화를 위한 교수협의회(민교협) 회장도 그렇고, 보수 신문이 주장하는 전교조 후보 이미지도 그렇다. 그런데 멀리서 처음 본 주 교수는 내민 손을 시민들이 보지 못하고 지나치기만 해도 쑥스러워 어쩔 줄 몰라 하는 미소가 편안한 한 소시민이었다.



▶ 프로필만 보면 투사의 이미지가 강하게 난다. 그런데 실제 이미지가 많이 다른 것 같다. 스스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일반 시민들을 투사로 만들던 시기가 있었다. 86년 말 귀국하고, 87년 교수 임용이 되었다. 그리고 이어서 격동의 시절이 기다리고 있었다. 당시 의식 있는 교수들은 단지 양심의 소리대로 행동했다. 그러다 보니 성명에 참여하고, 각 기관의 리스트에 이름이 올라가고, 모일 곳이 있으면 모였고 시위나 농성이 필요하면 했던 것이다. 민교협 교수들이 대부분 순수한 사람들이 많다. 순수한 사람들이기에 사회적 지위와 환경에도 불구하고, 어려움 속에서도 자기 이익이 아닌 공동의 이익을 위해 싸울 수 있었을 것이다.


이번 교육감 선거는 진보진영의 새로운 실험


서울시 교육감 선거는 마지막까지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상황으로 흘렀다. 진보와 보수 대결구도로 전개되면서 온갖 흑색선전이 난무하는 선거로 치러졌다. 그 중 대미을 장식한 것이 ‘전교조 후보론’이다. 거리에는 ‘전교조에 휘둘리면 교육이 망합니다’, ‘전교조에 우리 아이들을 맡길 수 없습니다’ 등의 플래카드가 걸렸고, 막판 효과를 발휘했다. 결과는 공정택 현 교육감의 신승으로 끝이 났다.


▶ 선거가 박빙으로 끝이 났다. 800만 유권자 중 2만여 표차라면 많은 아쉬움이 남을텐데, 선거에 대한 소회를 말해 달라.


소중한 경험이었다. 이번 선거는 진보진영의 새로운 실험이었다. 각 정당이나 사회단체의 틀을 넘어 진보 진영이 선거에서 하나로 뭉쳤던 유례가 없다. 그것만으로도 소중한 자산이라고 생각한다.


▶ 선거운동만 놓고 본다면 실패한 선거였다는 보여진다. 빠른 결정과 선거운동을 통합할 만한 조직적 역량이 부족한 것으로 보였다. 그런 이유 중 하나가 진보 세력의 결집이라는 물리적 어려움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일면 맞는 말이기도 하다. 선거 초반에는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로 움직일 수 있었다. 짧은 선거 기간에서 초반의 어려움에 대한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진보진영이 함께 하는 틀 자체가 새로운 시도라는 측면에서 훨씬 큰 가치를 갖는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소중한 자산을 어떻게 끌어갈 것인지를 고민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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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광장에서의 유세장면, 사진 주경복 후보 홈페이지)


선거, 그리고 언론


▶ 현장에서 직접 뛰어보니 참 아쉬운 점이 많아 보인다. 특히 방송의 관심이 현저하게 떨어졌다. 유일하게 한 번 있었던 후보 초청 방송토론회가 평일 오후 2시에 열렸다는 것은 방송이 얼마나 형식적으로 교육감 선거를 다루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선거를 치르면서 방송이나 언론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이번 선거는 시간과의 싸움이었다. 시간이 턱 없이 부족했다. 인지도가 없는 사람이 처음 선거를 치르기에는 너무 많은 문제점들이 산재해 있다. 또한 서울시교육감 선거가 지역선거라는 점에서 방송의 홍보가 거의 없었다고 봐도 될 것이다. 전국방송이기에 지역선거를 자주 다루는 것이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것 을 이해하더라도 전국적으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서울시교육감선거에 너무 소홀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그에 비해 보수신문들의 활약은 눈부셨다. 모 신문은 나 한 사람에 대해 선거운동 기간 동안 세 번의 악의적인 사설을 쓰기도 했다.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한지 기가 찰 노릇이다. 짧은 선거운동 기간에 유권자의 관심을 일으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각 후보나 선관위뿐 아니라 사회의 공공성을 지켜야 할 방송과 언론의 역할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방송은 제 역할을 전혀 하지 못했고, 일부 신문은 그들만의 리그에 전념했다. 이것이 교육감 선거를 치르면서 보게 된 우리 언론의 현실이다.


선거로 본 진보, 중도, 보수의 자리


▶ 치열한 접전을 벌였지만 선거에서 졌다. 선거에서 진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먼저 선거운동에 서툴렀다. 그것이 가장 큰 이유가 될 것이다.


▶ 이번 선거는 진보와 보수의 틀 안에서 이념대결로 진행된 측면이 트다. 그에 대한 평가는 어떻게 내리고 있는가?


선거 구도의 관점에서만 본다면 보수가 이기는 구조가 만들어져 있다. 여론조사나 사람들을 만나보면 진보 성향의 시민들이 더 많은 것 같다. 이는 현 정부의 실정과 부당함을 바라보는 눈이 그대로 투영된 것이다. 그런데 진보성향의 시민들은 이미 여러 번의 패배로 인한 패배주의에 빠져 있다. 참여가 저조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중도 성향을 가진 사람들은 현 사회의 이슈나 현안에 무지한 경우가 많다. 이런 중도 성향의 시민들을 깨우고 투표장으로 불러들이기에는 선거에 너무 많은 제약과 한계가 있다. 이에 반해 보수 성향의 시민들은 진보진영의 전유물이었던 NGO활동 등을 통해 조직력이 탄탄해졌다. 이번 선거에서도 잘 드러났다.


▶ 진보 진영의 패배주의가 어느 정도 영향을 끼쳤다는 것인데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는 말이 있다. 진보 세력이 교육에 대해 경험적으로 능력을 보여줄 기회가 없었다. 처음에는 비판과 더불어 대안을 제시하는데 역량이 부족했다. 하지만 이제 대안제시가 가능한 세대에 와서는 아직까지 그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이번 교육감 선거가 대안을 보여 줄 기회였지만 결국 실패한 것이다. 결국 그 첫 번째 기회를 얻지 못한 가장 큰 책임은 나에게 있다. 지지해 주신 많은 분들을 실망시켜 정말 죄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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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후 후보 홈페이지에 올린 낙선인사)



우리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상상력’


▶ 대학에서 학생들을 대하다보면, 똑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개성 있고 일면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한 학생들이 수업 과정에서 생각하는 것, 만들어내는 것에는 거의 차이가 없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한 마디로 상상력이 부족하다. 예민한 감수성이 모두 증발된 상태에서 학생들이 대학으로 들어온다. 감수성이 개발될 시기의 아이들은 학습경쟁이라는 과제 외에 어떤 것도 허락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아이들이 대학에서 할 수 있는 것의 한계는 너무 뚜렷하다. 초중고에서 너무 많은 것을 잃어버리는 아이들을 보면 참 안타깝다는 마음을 버릴 수가 없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배우는 것은 생존능력이다. 살기 위해 싸워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당연히 아이들에게 필요한 상상력, 미적 감각 등 그 시간이 아니면 잃어버리게 되는 고급영역들이 황폐화 되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획일화된 학습 요구를 넘어서 상상력과 자율성을 키워주지 않는 이상 고등교육의 성공도 기대할 수 없다.


주경복 교수는 지금의 교육을 스포츠에 비유해 설명한다.


경제상황이 어렵던 시절 스포츠에는 헝그리 정신이라는 것이 있었다. 하지만 요즘은 다르다. 스포츠에도 과학 시스템이 도입되고 다양한 시도들이 이루어지고 있다. 어느 정도 즐기는 스포츠가 가능한 시기가 되었다. 교육도 이렇게 가야한다. 지금 우리 교육이 강조하는 경쟁은 단지 헝그리 정신에 토대를 둔 것이라고 생각한다. 교육만 제자리 걸음이고, 요즘은 그 마저도 다시 후퇴하고 있다.   


한국 교육, 바꿀 수 있다


한국 교육을 보면 지레 포기하는 사람이 많다.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팽배하다. 하지만 주경복 교수는 바꿀 수 있다고 단언한다.


▶ 한국 교육은 사회구조적인 문제와 맞물려 해결하기 어려운 구조로 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진보 후보로서 한국교육의 변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교육을 바꾸는 것을 너무 크고 이상적인 것으로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현실은 어려워 보이지만, 그 자체가 시지프스 신화의 바위 덩어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초중고의 문제만으로 풀려고 하면 풀기 어렵다. 부모들의 최종 목표는 대학이기 때문이다. 초중고는 학습권의 평등이 강조된 공교육 강화를 방향으로 잡고, 대학의 시스템을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획일화, 서열화 된 대학 등 고등교육 기관을 직업, 전문기관 확대 등을 통해 복선화, 다양화 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두 가지를 함께 지향해 간다면 한국 교육의 미래가 그리 어둡지 않다고 본다.


2010년 교육감 선거, 주경복 교수의 선택은?

   

▶ 이번 선거에 나오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개인적 욕심은 전혀 없었다. 진보진영이 교육에 대해 책임 질 시기라고 생각했고, 숙의 결과 최종적으로 나에게 역할이 주어져 따랐을 뿐이다. 교육감 선거에 나오기 위해 개인적으로는 상당히 많은 것을 포기해야 했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그럼에도 교육감 선거에 출마한 것은 시대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였다. 앞으로도 한국 교육이 옳게 가기 위해 어디에서든 최선을 다할 것이다.


▶ 이번 서울시 교육감 선거의 석패와 함께 주경복 교수의 2010년 출마를 예측하는 시각이 많다.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거의 기정사실화 하고 있는 분위기이기도 하다. 어떤 계획을 가지고 계시는지?


지금으로서는 아무 것도 예측할 수 없다. 한국의 상황은 예측 불가능성이 늘 존재한다. 이번 선거에 개인적인 욕심이 없었듯이 앞으로도 마찬가지이다. 혹시라도 기회가 주어진다면 회피하지는 않겠지만, 다음 선거에 내가 먼저 나가겠다고 미리 준비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옳은 교육을 위한 사회적 요구가 어떻게 변화하는지에 따라 흘러가는 것이 좋다고 본다.


▶ 마지막으로 현 교육감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어려운 사회 속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의 의식수준이 그대로 교육에 투영되는 것 같아 안타깝다. 교육을 망치지 않기만 바랄뿐이다. 경쟁만으로는 교육을 세울 수 없다. 아이들에게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공정택 교육감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기 바란다.


마치며


주경복 교수와는 인터뷰를 한 것이 아니다. 그냥 이야기를 나누었다. 두 시간여 이야기를 나누고 돌아서며 ‘참 맑고 순수한 분’이라는 생각이 마음에 남았다. 조금씩 메모해 두었던 것을 인터뷰 기사로 올릴 수 있을까, 나오는 길에 허락을 받았다.

2008년 서울시교육감 선거는 보수진영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다음날부터 공정택 교육감의 입을 타고 쏟아지는 교육의 방향은 한 마디로, ‘경쟁강화, 학교서열화’이다. 선거에는 졌다. 하지만 교육의 주체는 여전히 학생들이고 학부모들이다. 그들의 현명한 판단과 아이들을 위한 옳은 선택을 이제부터라도 믿어보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다.


입술에는 아직도 치열한 전투의 흔적이 남아 있지만, 전혀 패자 같지 않은 편안한 얼굴의  주경복 교수가 했던 첫 마디가 생각난다.
"나는 낙천적입니다. 현실에서는 늘 치열하게 살지만, 마음은 가능성 있는 미래를 봅니다."

Posted by 우리예리

광복 63주년,
거리에는 신생 국가 대한민국의 60년을 축하하는 현수막들만 걸렸습니다.

청와대 홈피에 덜렁 건국 60주년만 걸어놨으니,
정부청사도 건국 60주년,
세종로 네거리에서 둘러 본 모든 기업들이 건국 60년을 맘껏 축하했습니다.
행사도 거창하게 치렀다죠? 아마.
그들에겐 일본의 악랄했던 36년도, 그 시기에 나라와 민족을 위해 죽어갔던 열사들도, 당연히 독도도 없는 거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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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광복 63주년을 그간 우리 민족의 역사를 깡그리 없애려는 세력에게 그냥 둘 수는 없겠죠?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광복 63주년 우리의 참 역사를 축하하기 위해 모였습니다.
그런데 경찰들 정말 장난 아니네요.
기념행사는 하지도 못했습니다.
오늘 모일 공간도 주지 않았던 경찰들이 바로 물대포로 화답하는군요.
그냥 밀고 들어오며 쏘아대고 색소가 묻은 사람들은 즉시 연행,
이것이 2008년 8월 15일 63주년 광복절의 서울 모습입니다.



 
한 여성이 연행되어 갔는데요.
이 여성은 세번째 물대포를 쏘며 경찰이 들어올 때 분명히 인도에 있었습니다.
어떤 경고도 없이 바로 쏘아대던 물대포와 경찰을 피할 이유가 없어 그 자리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횡단보도 가운데에 버스를 타기 위한 인도에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당당했던 것이구요.
그런데 여경들이 한참을 둘러 싸고 있더니 연행해 가더군요.
아, 색소가 묻어 있었다는 이유로.
오늘 그렇게 연행된 사람들이 100여명 가까이 된다는 군요.
2008년 8월 15일 63주년 광복절의 서울 모습입니다.

 
Posted by 우리예리
아직도 때 묻지 않은 옛 동독땅 구석구석에는 작은 볼거리들이 있습니다. 옛 동독이라도 동베를린지역이나 라이프찌히, 드레스덴 등은 통독 후 눈에 띤 변화를 계속해 왔습니다. 하지만 중소형 도시들은 아직 그대로 남은 곳이 많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동독지역을 돌아보는 것이 재미있습니다. 아직 순박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고, 시골 풍경 또한 서독지역의 그것과 달라 훨씬 사람냄새가 나기 때문입니다.

동독을 동서로 가로지르는 도로가 4번 고속도로입니다. 옛 동독 땅에 들어서 약 1시간 정도 달리면 에어푸르트(Erfurt) 표지가 보입니다. 지금 에어푸르트는 동독지역에서는 중간 정도의 규모의 도시입니다. 하지만 중세시대에는 상당히 유명했던 곳입니다. 1400년대에 이미 대학이 생겨 학생들이 모여 들었고, 대성당은 당시 에어푸르트의 위용이 엄청 났음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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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어푸르트 대성당)



에어푸르트로 들어서면 한 눈에 볼거리 많은 중세도시임을 알 수 있습니다. 서로 마주보고 있는 대성 마리엔돔과 세베리교회, 도시 여기저기에 세워졌던 중세의 높은 탑들, 시청을 중심으로 볼 수 있는 르네상스의 백미 건물들, 아우구스티너 수도원 등은, 눈에 띄게 아름다운 볼거리들이랍니다.


오늘은 그런 볼거리를 좀 떠나서 독일 중세의 단편을 읽을 수 있는 다리를 하나 소개하려고 합니다. 크뢰머 다리(Kraemerbruecke)입니다.


영화 ‘향수’를 보셨는지 모르겠네요. 향수는 향수를 소재로 인간의 본능과 탐욕의 절정을 다룬 프랑스 영화입니다. 벤 위쇼와 더스틴 호프만이 주연을 했죠. 원작은 ‘파트리크 쥐스킨스’의 향수이구요. 전 세계 1500만부가 팔린 책이기도 합니다.


영화이야기를 하려는 건 아니구요. 영화 향수의 첫 장면이 안개 낀 다리 위의 집들로 시작합니다. 당시 유럽은 땅이 모자란 시기도 아닌데 다리 위에 집이나 상점을 짓는 경우가 많았죠. 그 장면이 바로 아래 사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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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향수'의 첫 장면)  


다음 사진은 오늘 제가 소개하려는 크뢰머 다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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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푸르트의 크뢰머 다리)


다리가 처음 세워진 것은 1117년입니다. 나무 다리였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불은 심심찮게 있었던 듯, 몇 번의 화재가 나고 다시 만들고 하던 것을 1325년에 돌로 만들게 됩니다. 다리의 길이는 79m이니 그리 긴 다리는 아닙니다.

1325년 돌로 다리가 만들어 졌고, 그 후 1472년 다리 위에 집이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62개의 건물이 있었는데, 지금은 32개의 건물이 다리 위에 지어져 있습니다.


이런 다리 위의 집은 지금도 독일에서는 유일한 건축형태로 명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안쪽에서 보는 사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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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다리 위에 건물을 짓기 시작했을까?

다리 위의 건물들은 상점으로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상점도 있고 일반 가구들도 있지만요. 당시 유럽에서는 로마교황청으로 빠져나가는 세금이 어마어마하게 많았습니다. 그 중 가장 큰 것이 농업용이나 상업용으로 땅을 빌려 쓰고 임대료를 갚는 지대였습니다. 에어푸르트도 대성당을 중심으로 그 약탈이 아주 심했습니다. 이런 세금을 줄이기 위해 물이 흐르는 다리 위에 상점을 짓기 시작한 것입니다. 영화 향수의 장면도 마찬가지이지요.


물은 이렇게 흐르는데요.
크뢰머 다리 아래는 물이 많이 말라 세 군데로만 흐르고 있습니다.
하지만 비가 많이 오는 겨울철에는 기둥 아래로 물이 가득차게 흐르고 물의 양도 상당히 많아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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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머 다리는 에어푸르트 중심인 구시청사에서 걸어서 약 5분 정도의 거리에 있습니다. 맘만 먹으면 누구나 한 번 들러서 구경도 하고 다리 위의 상점에서 선물도 구입할 수 있습니다. 오래 된 다리이지만 정성스레 1985-86년에 수리를 했었구요, 이어서 1991-2002년까지 10여년에 걸쳐 원래의 모습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안전작업을 마쳤답니다.


지금은 유지보수에 드는 돈이 많아서 재단을 운영하면서 옛 자산으로 그 가치를 지켜가고 있습니다.

Posted by 우리예리
유럽의 교회나 성당들을 돌다보면 가장 흔하게 보게 되는 것이 ‘파이프오르겔’입니다. 유럽 교회 몇 곳의 파이프오르겔을 소개합니다. 파이프오르겔이라기 보다는 파이프오르겔의 파이프만 소개가 되겠네요.


우선 웹 사이트에서 찾은 파이프오르겔에 대한 간단한 역사를 보시구요.

파이프오르간의 기원과 발전

오르간이라는 말은 "기구", "도구"라는 의미의 희랍어 "Organon"에서 유래되었으며, 14세기 중엽에는 "악기의 여왕"으로 불리워졌다. 오르간의 전신은 구약성서에 나오는 우가브(Ugab: 몇 개의 파이프를 조립하여 입으로 부는 우리의 전래 악기인 생황(笙簧)과 유사한 악기)라는 악기인데, 이를 기원으로 보면 그 역사는 2000년이 족히 넘는다.

파이프 오르간은 기원전 246년, 물의 힘으로 공기로 보내 판(Reed)을 열고 닫음으로써 파이프를 울리게 하는 수력오르간을 발명한 것이 효시가 되었다. 기원후 757년 비잔티움을 중심으로 공기작용에 의한 오르간으로 발전되었고, 9세기에 이르러서는 교회의 수도원을 중심으로 독일의 쾰른, 스트라스부르그, 그리고 로마에서 많은 제작과 발전이 있었다. 파이프오르간은 953년 쾰른 대성당에서 거행된 대주교 착좌식 때 처음으로 공식 사용되었으며, 1418년부터 발건반(pedal)이 부착되기 시작하여 이후 르네상스와 바로크 시대를 거치며 각 나라마다 개성 있는 발전을 해왔다.

오르간의 종류는 매우 다양하다. 그러나 엄밀한 의미의 오르간은 2단 이상의 손건반과 함께 발건반을 갖추고, 바람을 일으키는 장치를 통하여 일정한 압력을 만들어 이 때 발생하는 바람을 건반을 누를 때마다 각 파이프로 보내 소리를 내는 파이프오르간을 말한다. 1970년대부터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게된 전자오르간은 스피커를 통하여 파이프오르간의 자연음을 모방한 전자음을 만들어내는 것으로서, 본래 의미의 파이프오르간은 아니다. 그리고 우리 나라에 피아노가 널리 보급되기 전에 학교에서 많이 사용되었던 풍금은 바람을 빨아들이는 방식의 리드오르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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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중북부 아이스레벤의 성 안드레아스 교회의 파이프오르겔입니다. 이곳은 종교개혁자 루터가 태어나고 죽은 곳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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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지역의 성 페트리 교회구요. 많이 흔들렸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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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푸르트의 어거스트수도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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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지역의 대성당이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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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텐베르그의 마리엔 교회입니다. 비텐베르그는 베를린에서 약 70km정도 남쪽의 작은 도시입니다. 루터가 종교개혁을 시작했던 도시로도 유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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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지역의 성문교회구요.

여기까지는 모두 옛 동독에 속하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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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어의 종교개혁기념교회입니다. 스파이어는 독일에서 가장 유명한 지역 중 하나인 하이텔베르그에서 약 40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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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지역의 대성당이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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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독일을 조금 벗어나 있는 룩셈부르그의 노틀담 성전입니다. 룩셈부르그는 독일에 국경을 두고 있는 작은 도시국가입니다.



다음엔 다른 독일 사진을 한 번 준비해 보지요.


Posted by 우리예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