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정책평가는 시장의 변화 만으로도 할 수 있다.
참여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실패했다고 한다. 지금은 아니니까 실패했었다고 한다. 왜? 시장이 계속 상승했으니가. 맞는 말이다. 하지만 참여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를 보고, 적어도 참여정부가 부동산 풀어놓으려고 했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노력은 했지만 부동산 상승의 심리적 저항선을 이기지 못했다고 말하는 것이 옳다.
그래도 국민들은 책임을 물었다. 고생한 끝에 부동산 가격을 잡았는데고 말이다.

이명박 정부의 정책이 가시화 되고 있다. 그런데 참 신기한 정책이 나올 때마다 시장이 환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어떤 시장이?

(의료서비스의 질을 높인다며) 건강보험 당연제지정 폐지 의견이 나오자 - 의료계와 보험사들이 쌍수를 들어 환영한다. 국민 주머니의 건강비용이 몇 배나 늘어 그들의 주머니로 흘러 들어가게 되어 있으니까.

(사교육 없야겠다며) 교육정책 쏟아낼 때마다 - 학원 비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다. 한국형 토익정책까지 나오자 안면근육 관리가 쉽지 않다고 한다.

(싼 값에 집을 제공하겠다고) 반의 반값 아파느 등, 부동산 정책을 내 놓는 데 - 왠 일인지 부동산 시장의 활성화와 부동산 가격 상승은 동반으로 날개 짓을 하고 있다.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정부조직 슬림화 하겠다고) 조직을 개편한다는 데 - 도대체 뭐가 중요한지 이랬다 저랬다에 머리가 아플 지경이다. '인재'와 '교육'을 거의 동일 개념으로 이해한다든가 조직의 철학과 관계 없이 이름이 바뀌어도 된다는 생각에는 거의 졸도할 지경이다.

(탁상행정 안 된다고) 난리를 치더니 - 그래 중요한 사업이나 결정들 다 미뤄 놓고 인수위 전체가 '전봇대' 하나에 매달린 게, 탁상행정이나 전시행정이 아니면 또 뭘까?

(공무원 조직의 문제가 많아서) 고쳐야 된다고 하는 데 - 가만보니 2mb CEO시절 이야기란다. 2mb 생각이 10년 전에 머물러 있는 동안, 우리나라 공무원이 얼마나 많이 변했는지 mb와 인수위만 모르는 것 같다. 길 가던 사람 막아놓고 물어보라. 우리 공무원이 10년 전과 같으냐고? 생각해 보니 그 공무원이 한나라(민정당) 정권 때의 공무원 이었더라.
 
어떻게 정책을 내 놓을 때마다 시장의 반응은 거꾸로 가는 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정말 궁금한 게 있다. 2mb와 인수위는 알면서도 저런 정책을 내 놓는 걸까? 정말 자기들 말대로 다 잘 될 거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걸까?
전자라면 정말 나쁜 놈들이다. 후자라면? 답이 안 나온다.

Posted by 우리예리
moveon21의 글에 반더빌트님이 댓글을 달고 본글을 올리셨네요. 저도 그곳의 댓글을 본 글로 올립니다.  저도 좀 길어졌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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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이 길기는 하지만 팩트보다는 뻥튀기나 감정 섞기에 더 치중했군요.

댓글 쓰고 그걸 본 글로까지 올리셨는데... 전 짧게 하지요.

분양원가공개는 맞습니다. 이유야 어떻든 대선공약으로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그 다음부터는 거의 생각나는 대로 쓰기 수준이군요. 참여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가능한 모든 것을 망라한 총체적인 것입니다. 언론의 왜곡으로 심리적 저항선을 지키지 못한 것이 패인이기는 하지만 정책적 문제를 삼는다면 정확히 써야 합니다. 부동산 정책에는 공급확대와 투기수요억제라는 두 틀이 있습니다. 공급확대만 하다가는 투기적 요소가 더 드러날 가능성이 크고, 투기수요억제만 강제하다가는 공급이 부족해서 문제가 생길 수 있지요. 그래서 이 두 문제를 함께 고려해 나가야 합니다.


기업도시, 혁신도시의 기본이 먼지 아세요? 국가균형발전입니다. 우리나나라 문제의 핵심이 수도권 집중에 있습니다. 당장 수도권 집중이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비춰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장기적 측면에서의 균형발전이 없이는 우리나라의 경쟁력을 담보할 수 없게 됩니다. 그런 고려에서 시작된 것이 균형발전 정책입니다. 당장은 비효율적인 것이 있더라도 장기적인 국가경쟁력을 생각하자는 것이지요. 이게 부동산 폭등을 가져왔다구요? 물론 혁신도시를 중심으로 지대상승이 일어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 정도는 균형발전 측면에서 간당할 정도입니다. 부동산 폭등을 말할 때, 대부분의 중심은 강남권을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게 강북권까지 이어졌던 것이구요. 그리고 개발권은 대개 지자체에 그 권한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뉴타운 개발 등은 서울시의 정책이었고, 그런 정책이 부동산 가격 상승을 부축인다는 것이지요.


혹자는 혁신도시 건설을 위한 땅값 지불이 부동산으로 흘러들어갔다고 하는 데, 이것 또한 유언비어입니다. 겨우 전체 부동산 가격 상승의 3%를 주범으로 몰아가는 파렴치한 행위입니다.


참여정부 말기의 부동산가격 하락이 전세계적인 부동산가격 하락 때문이라는 말에는 실소를 금할 수가 없네요. 정책 강화로 인한 투기세력의 심리적 저항선이 무너진 때문인 건 참여정부에 비우호적인 언론에서도 하는 말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종부세 강화에 있었구요. 아, 부동산 관련 대출 규제가 실질적인 역할을 한 것도 있군요. 또 한쪽에서는 부동산 가격 오른다고 난리치더니 대출규제한다고 난리치더군요.


혁신도시를 위해 재벌에 특혜를 준 것이 100개도 넘는다. 님... 특혜라고 할 때는 누가봐도 납득할 증거가 있어야 겠네요. 그런 증거를 내 놓고 100개 넘게 특혜를 준다구요. 팩트 좀 보여주실래요. 대충 쓴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또 하나 주식시장이야기군요. 작년 2000포인트.. 갑자기 그렇게 되었나보죠. 호도하지 마세요. 주식시장 구준히 올랐고, 사실 이익은 2005-6년 투자자들이 훨씬 많이 얻었습니다. 작년에 갑자기 치 받은 게 아니란 거죠. 출발 당시 약 600이 2005년 1100까지 올라갔고, 2006년 1500까지 돌파했습니다. 이게 순차적인 주식시장 모습입니다. 부동산과 연관지어 막 넘어가려고는 안 했으면 합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요. 지금 주식시장은 미국의 서브프라임과 경제침체에 따른 동반하락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그나마 우리나라의 주식 펀더맨탈이 있기 때문에 이 정도 지켜주는 겁니다. 옛날 같으면 폭싹이 맞습니다.


이제 한미 FTA로 넘어갈까요? FTA가 필요하냐 안 하냐의 의견은 쓰지 않겠습니다. 이건 또 개 싸움이 될 테니까요. 님의 주장에만 답한다면..


언론에서 지 좋은대로 주장하는 의견만 받아서 적어 놓는군요. FTA당시 혹시 공식 홈페이지 방문이라도 해 보셨어요? 제가 미국과 한국 두 군데 다 다니면서 확인하고 보고 했습니다. 정보공개 수준이 미국보다도 훨씬 높았습니다. 그 많은 거 번역해와라, 이따위 소리나 안 했으면 좋겠습니다.


FTA 당시 정부청사 앞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집회가 열렸습니다. 그 중 가장 많았던 것이 농민집회입니다. 그곳에는 저도 참여하기도 했구요. 언제 차를 무슨 이유로 막았는지는 모르지만, 부풀리기는 안 했으면 좋겠습니다. 당시 보도기사들 찾아보세요. 광화문에 모였던 농민집회가 얼마나 많았는지...  님 말만 들으면 농민들 집회는 다 막은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 식으로 글쓰기는 말아야지요. 농민들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과 무슨 이유에선지 한 번 일어난 일을 전체로 호도하는 건 참 보기 안 좋습니다.


참여정부 실수 많습니다. 잘못한 것도 많구요. 비판 받아야 합니다. 부동산 마지막까지 고전한 것 사실입니다. 그런데요. 없는 것 까지 부풀리거나 생각나는 서 놓으면 팩트가 되는 것 같은 글은 쓰지 말았으면 합니다. 통틀어서 '너 나쁜놈', 이렇게 말하는 것보다 멍청한 비판은 없는 겁니다.

Posted by 우리예리
오늘 또 다시 불행한 일이 발생했습니다. 태안에서 15일에도 또 한 분의 노인이 음독 자살을 하셨는데, 오늘은 집회 도중에 분신을 시도하신 분이 중태라고 하는 군요. 태안기름유출 사태(이 명칭도 바꾸어야 한다는 의견도 있고) 이후 벌써 세 번째 입니다.


사고는 한 달이 지났지만 보상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 등의 이유로 어민들의 고통이 가중되어 가는 것 같습니다. 저도 세 번을 다녀왔는데 갈때마다 손길이 얼마나 필요한지 한숨만 나왔답니다. 하루 겨우 길어야 5-6시간 일하면서 일하는 게 표도 나지 않을 만큼 어려운 지경입니다. 어민들 입장에서는 그 마음이 어떨지 이해가 됩니다.


지금 현재 중요한 문제는 보상과 오염처리의 문제입니다. 사고 이후 오염처리는 많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체계적으로 잘 이루어 진 것으로 보입니다. 여기에는 100만명이 넘어서는 자원봉사자들의 힘이 컸습니다. 기술, 환경 분야의 논란은 있었지만, 이 또한 외국의 전문가들까지 인정할 정도로 초기대응이 좋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앞으로도 꾸준히 관심을 갖고 자연치유와 봉사를 함께 한다면 잘 해결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하지만 아직도 해결되지 않고 있는 것이 보상문제입니다. 여러 곳에서 성금이 답지하고 있지만 이조차도 어민들에게 나누어 주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법적인 절차가 복잡해서 당장 지급하기가 어렵다는 것이 이유입니다. 얼마나 행정편의적인 발상인지 모르겠습니다. 당장 영세어민들의 상태는 생존의 위협을 당할 정도로 상당히 어려운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어제 음독자살을 한 노인분도 맨손 어업으로 하루 하루 살아가는 분이었는 데, 아내의 병원비조차 구하지 못하는 어려움 때문에 음독자살을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법적제도에 미숙한 일반인들은 해결이 될 때까지 기다릴 수 밖에 없는 상태입니다. 이를 위해 16일에는 태안을 위한 법률대책회의를 발족하고 어민들의 법률지원 등을 하기로 했습니다. 이들이 요구하는 것은 세 가지입니다. 1. 완전복구 2.완전보상 3.가해자 무한책임이 그것입니다. 사실 영세어민들의 경우 보상 받을 수 있는 길이 거의 없기 때문에 이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제안들이 나올 것으로 보입니다.


현재로써 가장 좋은 방법은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는 길입니다. 어려운 법률적 상황이나 까다로운 피해 입증 책임을 미루지 말고 최소한이라도 먼저 배상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나서 나중에 업체에 구상권을 행사하는 방법이 있을 것입니다.  자살을 선택하는 어민이 당장의 생계를 걱정하던 영세어민이라는 것이 그 필요성을 보여줍니다. 오늘 태안의 집회에서 나온 이야기들이 고깝게 들리기 보다 그들의 생존에 관한 문제로 받아들여지고 처리되기를 바랍니다.


이런 와중에도 아직까지 정확한 사고의 원인파악조차 밝혀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경찰의 수사가 긑나고 검찰이 수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번 사고는 예인선 선장 한 사람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이미 한 시간 전부터 충돌의 위험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운행할 수 밖에 없었던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어야 합니다. 삼성중공업에 대한 비난이 높아지는 것도 이런 이유입니다. 삼성중공업의 적극적 협조와 사과가 아쉽습니다.

Posted by 우리예리
 

인수위의 정부부처 개편 방향에 좀 색 다른 것이 들어 있습니다. 이름하야 ‘특임장관’. 뭘 하는 장관인지에 대한 규정을 확실히 하는 것이 아니라 ‘그때그때 달라요’장관이라는 것이 특징입니다. 업무의 필요에 따라 특임장관이 나서서 해결하거나 추진한다는 것이 인수위의 설명입니다.


그러다 통일부의 폐지에 대한 논란이 거세게 일자, 이명박 당선자가 직접 나서서 특임장관이 남북대화나 특별한 활동 등을 할 수 있을 것이라며 진화에 나섰습니다. 특임 장관 중 1인은 남북 전문이 된다는 것인지 또는 다른 일을 하다 남북현안에 투입된다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직 알 수가 없습니다.


문제는 통일부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외교부에 통합 되는 것이 아니라고 설명했던 인수위의 설명이 좀 궁색해 진다는 것입니다. 엄연히 외교부 내에 통일부 업무, 즉 남북관계 업무가 존재할 텐데 또 다른 장관이 그 업무를 담당한다면 혼선을 나을 수밖에 없다는 거죠. 결국 특임장관의 역할론은 통일부 업무에 대한 중요성을 무시하다가 통일부 폐지 논란이 일자  그에 대응하기 위해 임기응변식 카드로 내어 놓은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아무리 보아도 이명박 정부는 남북관계의 중요성을 간과하고 있는 것이 분명해 보입니다.


또 다른 측면에서 특임장관의 신설 의도입니다. 특임 장관을 리베로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통상이나 외교 등의 현안이 생기면 투입해 협상 등을 통해 조절하고 챙기게 한다는 것입니다. 특임장관을 어떻게 활용하는냐에 따라 각 부처의 넘어서는 상당한 힘을 가질 수도 있다는 의미가 됩니다. 게다가 특임장관을 이용하는 것은 정치적 판단은 당연히 대통령의 몫이 되겠네요. 행정부 내에도 대통령의 영향력을 극대화시킬 또 다른 안전장치가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이미 행정부의 수장이 대통령인데도 정치적이건 그렇지 않건 권력 행사의 가능성을 높이는 것이 될 것입니다.


이명박 당선자는 당정일체형의 정치구조를 천명한바 있습니다. 이미 당정협의가 시작되었구요. 게다가 어쩔 수 없이 청와대의 역할이 확대되는 방향으로 구조가 가도록 조직이 짜여지고 있습니다. 게다가 이제 행정부 내에도 업무를 관리하기 위한 또는 장악력을 높이기 위한 비서실을 둔다는 게 특임장관의 역할로 보이는 것입니다. 총리의 역할은 축소하면서 총리에게 다 맡기겠다, 정부조직을 줄여 슬림화 하겠다면서 공무원 퇴출은 없다, 등의 완전히 상충 되는 의견들이 난무해도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기 때문에 벌어지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직접 일하는 장관은 줄이면서, 정치적 성향의 정무장관과 정치적으로 이용 가능한 무임소 장관을 만들어서 장악력과 정치적 영향력만 늘리려는 것이 눈에 보입니다. 아, 한 가지 더 있네요. 부처는 줄여도 논공행상은 가능하도록 숫자는 유지해야 하는 처지가 안타깝네요.

Posted by 우리예리
이명박 정부의 아니면 말고식 플레이가 계속 되고 있다.
한 번 던져보고 접는 것이 작전인지, 아니면 자기들이 한 마디 하면 모두가 따라올 거라는 오만에 빠진 것인지는 알 수가 없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런 행태에 대해 언론은 여전히 우호적이라는 것이다.
새정부 출범을 앞두고 언론이 굳이 김을 빼거나 반대 포지션을 취할 이유는 없다. 그럼에도 사실을 알리고 잘못 된 것에 대한 비판은 언론의 의무이다.
참여정부에 대한 비판을 넘어선 비난과 저주의 날카로움(?)은 찾아 볼 수 없다.

이명박 정부는 기업프랜들리 정부라고 한다. 기업 활동을 활발하게 하기 위해서 대폭 규제를 풀어갈 태세다. 기업활동의 보장은 맞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규제가 있었다면 그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규제의 잘못된 부분은 풀고 다시 시작하는 것은 좋지만, 규제의 이유를 불문하고 기업에 치우지는 것은 부작용을 낳을 수 밖에 없다.
그런 발상이 발전해서 나온 발언이, 노동자들의 '태안봉사활동 자세요구'가 될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무척이나 당황스럽고 중요하게 받아들인 이런 발언조차 잛은 에피소드로 묻혀 버렸다. 이게 언론의 현주소이다.

정부부처가 개편될 전망이다. 인수위의 안은 13부 2처로의 개편이다. 과기부, 여성부, 해양수산부, 통일부 등이 문을 닫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신설되는 것이 정무장관인가 보다. 지금 인수위의 안을 보면 총리의 역할도 줄이고 부서도 줄이되, 정무기능과 청와대의 역할은 강화하는 것이다. 한 마디로 말하면 대통령의 역할만 비대화 시키겠다는 것이다.
물론 청와대의 직급이나 인원도 줄이겠다는 의견을 내 놓았지만 잘 될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처음에는 그렇게 출발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정부기능의 축소로 인한 업무량을 청와대로 집중시키는 이상 청와대의 인원은 다시 늘어나게 될 것이다. 권력의 집중화가 이번 개편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삼성특검에서 법원이 압수수색을 사본으로 한정하라고 했던 모양이다. 김용철 변호사의 결단 이후 이미 2개월 이상이 흘렀다. 삼성 조직의 특성상 치밀하게 증거인멸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사본을 떡하니 공개적으로 놔둘리가 없다. 그런데도 업무를 방해하지 말고 사본만으로 압수수색을 제한한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행태이다. 지금까지 그런 예가 없었던(정확하지는 않지만) 예로 보더라도 법원의 행태가 괘씸하다. 어디에도 삼성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는 삼성공화국이라는 것이 실감이 난다.

총선을 앞두고 말들이 많다. 한나라는 압승을, 그 외의 정당은 한나라당에 개헌저지선을 주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일차 목표이다. 정말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이 의석수일까? 이참에 정말 노선에 대한 재정비가 이루어지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탈당이냐 아니냐를 두고 서로 싸우기 보다는 서로를 인정해 줄 수 있는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가치와 정책 중심의 정당으로 개편되기를 바란다. 누가 있건 누가 나가건 의석이나 자리가 아니라 그 사람의 생각이 먼저 존중되었으면 하는 것이다. 그렇게 새롭게 나뉜 상태에서 맘껏 지지하고 비판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같다.
Posted by 우리예리
루이스와 톨킨

콜린 듀리에즈 | 홍종락 옮김

홍성사 2005.10.21


루이스와 톨킨(소제: 우정의 선물)

콜린 듀리에즈 지음


루이스와 톨킨, 책을 손에 든 후 짬짬이 읽어가며 그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 견딜 수가 없었다. 영국인이면서 미국에서 더 유명한 두 사람, 루이스와 톨킨의 우정을 그린 책이다.

일기 쉬운 책은 아니다. 1900년대 영국의 문학사를 이해하지 못하다면 더디게 진도가 나갈 수도 있다. 하지만 이야기의 중심이 루이스와 톨킨의 우정과 두 사람의 작품을 중심으로 쓰여 졌기 때문에 다른 것은 내려놓고 읽는다면 흐르는 물처럼 읽어 내릴 수도 있다.


이야기는 두 사람이 생존해서 늘 함께 하던 공간을 중심으로 이어진다. 루이스의 연구실과 세인트자일로의 ‘독수리와 아이’라는 카페이다. 이곳에서 루이스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잉클링즈’라는 모임이 열렸다. 이 모임을 중심으로 우정과 문학적 상상력을 공유해 나가는 이야기가 루이스와 톨킨이다.


톨킨은 ‘반지의 제왕’의 저자이다. 루이스는 ‘나니아 나라 이야기’의 저자로 우리에게 알려져 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소설 ‘반지의 제왕’, 동화의 계보를 잇는 ‘나니아 나라 이야기’가 쓰여 지기까지의 두 사람의 우정이 책의 흐름을 이어간다. 두 작품은 영화로 만들어져 더욱 친근하기도 하다.


톨킨은 캠브리지의 대학의 교수이며, 유명한 언어학자이다. 루이스는 옥스퍼드 대학의 교수로 있다가 노년에 톨킨의 제안을 받아들여 캠브리지 대학의 석좌교수로 옮기게 된다. 학자로써 소설가로써 서로의 작품세계에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친구로서 삶을 이어가는 모습을 흥미롭게 그려내고 있다.


이들의 모임 ‘일클링즈’에는 당시 영국문학에 위대한 흔적을 남겼던 작가들이 이름을 올렸다. 그 중 1945년 겨우 55세의 나이로 갑작스레 사망한 찰스 윌리엄스는 주요 멤버이면서 루이스에게 많은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40세에 작품 발표를 시작하고 15년 동안 사상가와 저술가로 이름을 떨친 윌리암스로 인해 루이스와 톨킨의 우정이 이상이 생기는 어려움도 겪게 된다. 하지만 윌리암스의 사망 이후로도 가장 열심히 ‘잉클링즈’를 지킨 것은 루이스와 톨킨이다.


루이스와 톨킨은 서로 같은 점이 많았고 또 다른 점이 많았다. 톨킨은 세심하고 내성적인데 반해 루이스는 호쾌하고 외향적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이성, 낭만주의 그리고 기독교라는 세 가지 테마에서 늘 일치했다. 그리고 서로의 상상력을 일으키고 세워주는 문학적 동지로서의 역할은 둘이 함께 있지 않았다면 그들의 작품이 이렇게 세상에 드러나고 이름을 떨칠 수 있었을까를 새삼 질문하게 할만큼 컸다.


책을 읽어가다 보면 수많은 이야기를 만난다. 완성되지 않은 이야기의 초고로부터 완성된 이야기의 해설까지, 작가는 두 사람의 작품과 배경 그리고 의미를 전하기에 조금도 소홀하지 않는다. ‘반지의 제왕’, ‘호빗’, ‘실마릴리온’, ‘스크루테이프의 편지’, ‘천국과 지옥의 이혼’, ‘사자와 마녀의 옷장’, ‘마법사의 조카’, ‘나니아 나라 이야기’, ‘버드나무에 부는 바람’, ‘요정이야기에 대하여’.....  이렇게 수 없이 많은 작품들의 이야기가 쉼 없이 반복된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어느 새 두 사람의 삶과 우정 그리고 일상의 이야기가 된다.


톨킨은 루이스에게 너무 많은 영향을 주었다. 무신론자이던 루이스가 유신론자로 바뀌는 데 가장 큰 영향을 주었던 이가 톨킨이다. 나중에 신학자가 아닌 루이스가 기독교 변증가가 된 것에는 불만이 있었지만 말이다. 뿐만 아니라 루이스의 신화적 상상력의 많은 부분은 톨킨과의 대화와 톨킨의 작품을 접하면서 얻게 된다.

그렇다면 톨킨에게 있어서의 루이스는 어떤 존재인가? 톨킨의 글을 빌리자면, “톨킨은 루이스에게 갚을 길 없는 큰 빚을 졌다. 그것은 흔히 말하는 ‘영향’이 아니라 ‘아낌없는 격려’였다. 루이스의 이야기를 들려달라는 끊임없는 요청과 격려가 없었다면 톨킨은 ‘반지의 제왕’을 완성할 수 없었을 것”이다.   


책을 읽어가는 내내 루이스와 톨킨의 이야기를 더 듣고 싶다는 충동, 그들의 소설을 다 읽어야만 시원해 질 것 같은 갑갑함에 시달렸다. 영국이 낳은 두 영웅, 톨킨과 루이스의 우정과 문학을 다룬 책 ‘루이스와 톨킨’, 곧 다시 한 번 손에 잡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Posted by 우리예리

제가 지난 여름 독일에 갔을 때 바쁜 틈을 타 오페라 공연을 보았습니다. 우연히 보게 된 이 공연이 그리 알려지지 않은 작품이더군요. 독일에서 성악을 하시고 독일 오페라극단에서 활동하시던 분 두 분에게 여쭤보아도 제목은 알지만 그 스토리나 내용을 정확히 알지 못한다고 하실만큼 그리 알려지지 않은 작품입니다. 책을 읽는 것도 아니고 오페라를 직접 원어로 듣다 보면 이해하기가 그리 쉽지 않다는 것쯤은 알고계시죠? 그래도 작품에 대한 해설이나 다른 방법으로의 선 이해가 있다면 훨씬 재미있게 볼 수 있을 테지만 말이죠.

어제 갑자기 호기심이 발동했습니다. 그래서 작품에 대해 조금 찾아보았는데 제대로 된 내용이 없더라구요. 그래도 독일에서 산 짠밥이 있어서 제 생각대로 스토리를 만들어 보았는데, 맞는지 아닌지에 대한 확신이 없네요.
혹시 아시는 분은 알려주세요^^.

오페라의 제목은 "La finta giardiniera"입니다.
한국어 제목으로는 "가짜 여정원사"로, 독일어 제목으로는 "Die Gärtnerin aus Liebe"로 알려져 있습니다.

모짜르트의 초기오페라 작품이죠.
초기작품들의 경우 작곡가의 색채가 많이 드러나지 않는 특징들이 있듯이, 이 작품도 모짜르트의 색채와는 많이 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 모짜르트의 색채가 뭐냐? 물으시면, 모른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곡이 만들어진 것은 1574년입니다. 신동에서 대작곡가로 변해 가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작품입니다. 뮌헨에서 오페라 상연을 초대 받아 만들었지만 1574년에는 작품상연기회를 갖지 못하고 있다가, 1575년 1월에 뮌헨호프테아터에서의 초연을 성공하며 여러 차례의 공연을 가지게 됩니다.

등장인물은 일곱명입니다.

Contino Velfiero 센티노 벨피오레 : 백작
Violante 비올란떼 : 후작부인
Arminda 아르민다 : 포데스타의 조카
Ramiro 라미로 : 기사 (트라베스티 역-여자가 남자 역할을 하는 것: 원작이 그렇게 만들어짐)
Serpetta 세르뻬따 : 포데스타의 하녀
Podesta 포데스타 : 시장
Roberto 로베르또 : 후작부인인 비오란테의 하인

내용:(내 맘대로)

위의 일곱 사람 간의 엉긴 사랑이야기입니다.
주인공은 당근 맨 위의 두 사람 센티노와 비올란떼입니다.
배경은 시장이던 포데스타의 집입니다.

시장인 포데스타는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려고 자신의 조카인 아르민다와 센티노 백작의 결혼을 추진하고, 센티노는 포데스타의 집으로 오게 됩니다.
그런데 그 집에는 한 여인이 있었는데, 정원사 여인 비올란떼입니다.
비올란떼는 원래 센티노의 연인이었고, 지금은 후작의 부인 이면서도, 센티노를 잊지 못해 포데스타의 집에 정원사로 변장해 있는 것입니다. 이때 정원사의 이름으로 사용 된 것이 Sandrina(산드리나)입니다.

이제 왜 "가짜 여정원사"인지 아시겠죠?

사랑 이야기만 해 볼까요?

시장 포데스타는 정원사인 산드리나(현재로는 후작 부인이며, 센티노를 찾아 변장한 여인이죠)를 사랑하고, 하녀인 세르뻬따는 주인인 시장 포데스타를 사랑하고, 기사 라미로와 포데스타의 조카 아르민다는 서로 사랑에 빠집니다.

이 복잡한 사랑 이야기가 끊임 없이 서로 의심하고 충고하고 감정적인 대립을 만들며 이어집니다.
얽힌 관계에서 꼬여가던 사랑의 관계는 스스로가 통제할 수 없는 감정의 끝에서 서로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죠.

마지막의 분위기가 말해 주듯... 
해피엔딩입니다.
주인공 둘은 다시 맺어집니다. 센티노와 비올란떼의 사랑.
이것을 가능하게 한 것이 시장 포데스타의 아량과 힘이었답니다.

센티노와 비올란떼..
라미로와 아르민다..
그리고 포데스타와 세르뻬타까지... 
트리플 결혼식으로 오페라는 끝이 납니다.
(마지막 부분이 맞는 건지는 약간 확신이 서지 않습니다만....)

오페라를 보면서 가장 혼란스러웠던 것이 라미로의 존재였는데, 나중에 이것저것 뒤져보다가 여자가 배역을 맞고 남자역을 하는 배역인 것을 알고서야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요기까지가 저의 호기심천국을 스스로 해소한 내용인데 어느 정도 맞는지 알 수가 없네요. 이 작품을 아는 분들이 마저 해결해 주면 너무 고맙겠어요..

Posted by 우리예리
 

루이스 vs 프로이트

아맨드 M. 니콜라이 지음/ 홍승기 옮김 / 홍성사


신의 존재를 둘러싼 논쟁은 세상이 창조되었을 때부터 또는 우연히 세상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때부터 지금까지 그치지 않고 있다. 마지막 심판이 있을 때까지 또는 어떤 이유로든 생명체가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

20-21기 서적에 가장 많은 이름을 올린 사상가들인 프로이트와 루이스 또한 예외는 아니다. 심리학자이며 정신과 의사인 니콜라이 박사의 하버드대 강의록을 엮은 ‘루이스 vs 프로이트’는 유신론자와 무신론자 사이의 뜨거운 격돌을 흥미 있게 진행시킨다. 두 사람이 만났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하지만 두 사람은 삶이 겹치는 순간을 살았고 서로를 알고 있었다. 두 사상가가 펼치는 신의 있고 없음에 대한 논쟁은 마치 마주보고 진행하는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저서 ‘꿈의 해석’으로 대표되는 프로이트(1856-1939)는 20세기 최고의 정신분석학자로 이름을 남겼다. 신으로부터 택함 받은 민족, 유대인으로 태어난 그는 아이러니하게도 신이 없음을 증명하는 데 그의 삶을 걸었다.

가장 뛰어난 기독교 변증론자 루이스(1898-1963), 그도 무신론자였다. 하지만 그의 지성은 신의 존재를 받아들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신앙을 감정적이나 기적으로 받아들이는 반면, 루이스는 조금씩 자신의 지성이 신에 의해 점령당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에게는 극적인 회심의 장면이 없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지성은 그를 기독교 변증을 위한 도구로 사용하게 한다.


1부와 2부로 나누어진다.

1부에서는 ‘무엇을 믿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프로이트와 루이스의 생애, 우주 너머의 지성적 존재에 대한 논쟁, 보편적 도덕률, 그리고 실재에 이르는 길에 대해 두 사람의 사상이 그려져 있다.

2부의 질문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이다.

행복, 성, 사랑, 고통 그리고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두 사상가의 논쟁이 이어진다.


각 주제마다 ‘왜?’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한 두 사상가의 치열한 변증이 펼쳐진다. 프로이트는 왜 신이 없는지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루이스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계시다는 증거를 나열한다. 두 사상가에게는 눈에 보이는 증거는 없다. 그들이 가진 지성이 논리이고 무기이다. 하지만 그 답은 늘 정반대에 놓인다. 두 사람의 논쟁을 쫒다보면 어느새 깊숙이 빠져버린다. 눈을 떼고 창밖을 보기에도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프로이트와 루이스, 둘 다 무신론자였다. 한 사람은 돌이켰고 한 사람은 돌이키지 않았다. 그 이유가 논쟁의 핵심이 된다. 왜 돌이켜야 했는지 에서부터 루이스의 변증은 시작되고, 왜 돌이킬 수 없는지가 프로이트의 변증이다. 둘 다 무신론자였기에 출발점은 같다. 문제를 의식하고 제기하고 바라보는 관점은 동일한 것이 많다. 하지만 제기 된 문제가 어느 방향으로 흘러가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다른 길을 드러낸다.


어떤 주제에서 만나든 두 사람의 논쟁은 흥미 있다. 서로 치고 막고 쉬다 다시 붙는 형상이 무협지의 그것에 비교할 만하다. 같은 생각에서 시작했지만 결국 두 사람은 전혀 거리를 좁히지 못한다.


신이 없다고 부르짖은 프로이트는 결국 신에게서 벗어나지 못했다. 신이 없음을 증명하기 위해 그는 늘 신에 대해 생각해야 했고, 때로는 신의 존재를 은연중에 고백하기도 한다. 정신분석학의 대가이면서도 늘 우울했고 정신적으로 자유하지 못했다. 그에게는 죽음의 공포가 따라 다녔다.

루이스는 지독히도 염세적인 인물이었다. 그런 그가 신을 받아들이고부터 변했다. 활기가 넘쳤고 교제가 풍부해졌다. 그렇다고 고통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지독한 고통을 경험하고 울부짖기도 했다. 하지만 그 또한 신의 섭리라는 것을 발견했다. 사랑하는 이의 죽음 앞에선 고통스러웠지만, 정작 자신의 죽음은 평화로웠다.


두 사람 다 뛰어난 통찰력을 가졌다. 그 통찰력이 주는 신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다면 기꺼이 권하고 싶은 책이다. 살짝 고백하건데 작가는 루이스에게 약간 기울어 있다.

Posted by 우리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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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의 기원을 찾다보면, "19세기말 영국과 미국에서 발생한 대중 오락물로 음악이 중심이 되어 춤과 극적인 요소가 가미된 종합 무대 구성물로 희가극인 오페레타에서 유래되었다"는 정의를 가장 먼저 발견한다. 하지만 조금만 더 들어가 보면 그 시작이 이탈리아와 프랑스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오페레타는 이미 19세기초 이탈리아에서 시작되었다. 흔히 빙빙 도는 왈츠와 왕자님으로 대변되는 데, 이는 도니제티가 자신의 오페라에 대사를 삽입하면서 대유행을 시작한 것이다. 이것이 국경을 맞닿아 있던 프랑스로 넘어갔고, 프랑스에선 오페라 코미디(op ra comique)나 오페라 희가극(op ra bouffe)으로 자리를 잡았다. 그 이후 여러 작가들에 의해 좀 더 가벼운 소재와 일인극 중심의 단편들이 만들어지며 대중화 되었고, 나중에는 다시 완결된 작품에 비중을 두면서 오페라타의 관습들이 만들어졌다. 여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좀 더 진화를 계속한 오페라타는 비극적인 아리아나 고상한 체 하는 연극은 더 짤막하고 재치 있고 미사여구가 덜 한 노래들로 대체되면서 사라져 가고 생동감 넘치는 춤(특히 그 유명한 캉캉 춤과 같은)이 예술성을 과시하던 발레를 대신하게 되었다. 이것이 이미 19세기 초에 이루어진 오페라타의 형성과정이다.

그 이후 거의 완성된 오페라타가 영국으로 그리고 본토의 문화를 그리워하던 미국으로 건너가 19세기 말에 꽃을 피우게 된다.

결론적으로 뮤지컬의 기원이 된 오페라타는 19세기 초에 이탈리아에서 시작되고 프랑스에서 거의 완성되어, 19세기 말에 영국과 미국에서 재즈가 가미된 현대의 형태로 꽃을 피웠다는 것이다.


서론이 길었다. 프랑스를 논하기 위해서이다. 오페라타의 시작을 알린 곳이 프랑스이지만, 그 이후 프랑스는 뮤지컬의 불모지로 알려져 왔다. 미국 브로드웨이의 화려한 부상과 상업적인 성공이 뮤지컬의 대명사로 떠오르면서 다른 지역이 왜소해진 것도 하나의 이유일 수 있지만, 프랑스인들의 의식에서 이유를 찾는 것이 더 타당하다. 프랑스인들의 세심하고 정적인 습관은 순수예술에 더 적합한 특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다보니 연극이나 영화 등의 장르에 더 잘 빠져들게 된다. 이웃나라 독일이 오페라에 열광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19세기 말부터 프랑스는 미술 등의 정적인 예술 분야나 영화, 연극으로 문화적 지평을 옮겨갔다. 당연히 큰 무대 보다는 작은 무대를 선호하게 된다.


변화가 시작된 것은 1970년대 이후이다. 전통 스토리에 기반한 뮤지컬이 만들어지기 시작한다. 이후 대형무대를 지향하는 작품들이 탄생하는 데, 프랑스의 3대 뮤지컬로 알려진 ‘노트르담 드 파리, 레딕스 십계, 로미오와 줄리엣’이 그것이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양가의 대조가 두렷한 분위기와 색조 그리고 두 사람의 눈부심이 아름답다. 노트르담 드 파리는 보지 못했다. 원작을 바탕으로 한 탄탄한 구조에 아름다운 선율이 돋보인단다.


이제 소개할 것은 ‘레딕스 십계’이다. 2008년 1월 19일까지 코엑스 대서양홀에서 공연되고 있다. 프랑스에서만 200만 관객, 450만장의 OST판매기록을 남긴 공연이고 보면 한 마디 더 덧붙이는 것이 사족이라는 생각을 할 만하다. 그래도 덧 붙여보자면.....


레딕스는 우리말로 십계가 아니다. le는 정관사이고 dix는 10이다. 그리고 commandements가 계명이다. 그러니 le dix commandements 가 십계가 된다.

이번 공연은 프랑스 오리지널 캐스트가 출연한다. 이미 초연부터 참여했던 배우들로부터 새로운 배우들까지 망라되어 있다. 한 가지 우려가 있었다. 오리지널 무대가 아닌 가설무대를 어떻게 꾸며낼 것인지에 대한 우려였다. 역시 화려한 무대에도 불구하고 진행상의 여러 가지 어려움들이 보였다. 하지만 이런 가설무대의 불편함은 금새 사라져버린다. 공연에 푹 빠져 있을라치면 어느덧 인터미션이다. 정말 시간이 빠르다는 표현밖에 덧붙이기가 어렵다.


레딕스는 모세가 시내산에서 계명을 받기까지의 일생을 그려낸 작품이다. 1부와 2부로 나뉘어 진행된다. 1부에서는 모세의 탄생과 추방 불타는 떨기나무에서의 사명까지를, 2부에서는 출애굽 과정과 시내산에서의 십계를 받기까지의 일들을 엮어낸다. 120분간의 공연을 꽉 채우기 위해 무려 20개의 노래가 불려진다.


공연의 포인트는 두 개의 축으로 이루어져 있다. 하나는 모세와 람세스의 우정과 싸움이다. 어려서부터 같이 커 온 모세와 람세스는 히브리인의 지도자와 이집트 황제로 대결하게 된다. 우정과 민족 사이의 갈등이 미묘하게 그리고 가슴 찡하게 불리어진다. 두 사람이 각 민족을 대표하듯이 이집트 병사들과 히브리인들의 대결구도도 공연 내내 화려한 몸놀림으로 이어진다. 놓쳐서는 안 되는 볼거리이다. 두 번째는 신과 히브리인 사이의 신앙과 반목의 흐름이다. 2부에 집중되어 히브리인들을 통해 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장면이 연출된다.


레딕스의 특징은 장엄하고 화려함 그리고 세심한 안무로 표현할 수 있다. 대형 무대 전체를 사용하는 연출에 압도당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공연을 보는 내내 넓은 무대를 다 사용하는 섬세한 안무를 한 눈에 보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배우들은 열정적이다. 프랑스인들의 섬세함과 예술에 대한 열정이 그대로 드러난다.


빼 놓을 수 없는 것이 주연배우들의 노래이다. 20곡의 노래로만 이어진 뮤지컬이다. 노래는 대부분 듀엣이나 트리플 하모니로 불려진다. 그들이 부르는 노래에는 이미 곡을 지휘하고 끌어가는 힘이 들어 있다. 한 곡이 끝나면 이미 다음 곡을 기다리는 묘한 매력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개인적으로는 미리암과 람세스의 노래가 좋다. 미리암의 노래는 열정적이다. 온 몸에 노래를 실어 관객들에게 날린다. 람세스의 노래는 확 트였다. 고음으로 치솟으면서도 끝간데없이 자연스럽다.

모세는 주인공인데 비해 노래에 대한 비중이 적어서 이상했다. 1부에서의 솔로곡은 겨우 한 곡, 아무래도 어색하다. 2부에 들어서도 좀체 앞으로 나서지 못한다. 모세의 진면목을 발견한 것은 공연의 마지막이다. 마지막 곡을 솔로로 부를 때의 모세에게서 진정한 카리스마가 느껴진다. 약 10분 정도의 긴 노래에 120분간 모세의 비중을 실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커튼콜에서 계속되는 모세의 노래를 듣노라면, 모세가 레딕스의 주인공임을 알게 된다. 그럼에도 개인적으로는 미리암과 람세스의 노래에 점수를 준다.


화려하고 장엄한 무대에서 시작된 레딕스, 그 서사시는 쉽게 끝나 버린다. 공연을 즐기는 내게 이처럼 빠른 120분을 본 적이 없다. 그래서 허무하다. 관객들과 호흡하려는 커튼콜과 무대인사 20여분이 빠졌더라면 왠지 모를 허무함에 혹평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공연 후의 무대서비스는 그 만큼 화려하고 예뻤다.


역시 프랑스인들은 전통 극을 만들고 해석해 내는 데에 탁월한 능력을 가졌다. 대서사시를 써 가면서도 작은 부분 하나도 놓치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더 감동적이다. 그래서 브로드웨이 작품들과는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로미오와 줄리엣’과 ‘레딕스’ 중 하나를 권하라면 ‘레딕스’를 권한다. 무대의 장엄하고 화려함이 그리고 세심함이 월등하다. 하지만 아름다운 이야기와 무대 위의 현란한 색조를 즐기려는 사람에겐 ‘로미오와 줄리엣’도 좋다. 노래에 마력이 있다. ‘노트르담 드 파리’를 이번 기회(2008년 2월)에 보게 될지는 모르겠다.

2007년의 마지막에 그리고 2008년의 처음에 찾아온 레딕스는 뮤지컬을 좋아하는 이들에게 좋은 선물이 될듯하다.

Posted by 우리예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