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보았던 연극이 아내의 취향이 아니라서 괜히 시간 낭비에 욕까지 먹었다. 만회의기회를 찾다보니 좋은 공연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윤효간 피아노콘서트 '피아노와 이빨'이다.

그런데... 저녁 7시 압구정역에서 딸 예리를 만났다. 6학년이다.
아내가 하는 작은 어린이 도서관의 봉사활동이 늦어져서 나올 수 없게 된 것이다. 독일에서 온지 겨우 20개월 남짓, 한국의 공연문화를 많이 접해보지 못한 예리에게 좋은 기회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사실 기대감은 내가 더 컸다. 좋은 공연을 찾기 위해 사이트를 뒤지고 후기들을 읽다가 발견한 '피아노와 이빨'에서 '뭔가 있다'는 느낌을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자연스레 공연에 대한 기대를 키우고 있었다.


4번 출구로 나오니 쌀쌀하다. 그래도 예리가 가져다준 겨울 외투를 받아 입으니, 하루 종일 홑 양복을 입고 떨던 몸이 따뜻해진다. 공연이 있는 발렌타인 극장까지는 채5분도 걸리지 않았다. 아직 25분 남았다. 예리가 아직 밥을 먹기 전이다.

극장 바로 앞의 포장마차는 만원이다. 저녁을 먹지 못하고 공연을 보려는 사람들이다. 둘이서 왕만두, 김치 만두 섞어서 1인분, 오뎅 3개를 먹었다. 둘이서. 따뜻한 오뎅 국물이 일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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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둘러 먹었는 데도 벌서 7시 20분, 급히 극장으로 들어간다. 들어가며 입구를 기억해 놓는다. 한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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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에 위치한 극장으로 내려가니 눈에 띄는 것이 있다. 예쁘게 만들어진 400회 돌파 기념 벽카드이다. 공연을 시작한 게 이미 2005년도였다. 공연을 꾸준히 한 개월 수만도 이미 17개월이란다. 그러다보니 어느새 훌쩍 400회를 넘겼다. 피아노 콘서트로는 최장이란다. 이제는 개인뿐만 아니라 기업이나 학교의 단체 공연으로도 이어지고 있다니 1인 피아노공연으로는 보기 드물게 사랑받고 있는 작품이다. 이렇게 장기공연을 할 수 있는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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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1월 1일 오늘은 414회째 공연이다. '어느새 400회를 무사히 마쳤습니다. 공연은 앞으로 계속될 것입니다.'- 홈피에서 보았던 글처럼 공연은 계속되고 있다.

공연장이 아담하다. 100여석이 조금 넘을 것 같다. 이렇게 작은 곳에서 이미 25,000명이 '피아노와 이빨'을 보았다. 해외에서 그리고 다른 공연장에서 이 공연을 본 사람은 훨씬 많아 그 10배에 이른다고 한다. 자그마치 250,000명이다.

앞에서 네 번째줄 가운데에 자리를 잡았다. 연주자가 잘 보일만한 좋은 위치이다. 공연이 시작되기 전, 우선 무대라도 찍어보자는 생각으로 셔터를 눌렀다.
너저분한 무대가 정감이 간다. 한편으론 상당히 깔끔하다는 느낌이 새삼든다. 어지러움 속의 깔끔함이라... 뭔가 맞지 않는 듯 느낌이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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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시작이다. 불이 꺼지고 윤효간의 연주와 삶을 담은 짧은 영상이 먼저 나온다. 첫 느낌... ‘다르다.’

연주가 시작되었다. 첫 곡은 비틀즈이다. ‘비틀즈’의 ‘헤이 주드’가 저렇게 해석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충격적이다. 윤효간의 음악세계에 영향을 준 사람은 여럿이다. 헤비메탈에서 클래식까지 다양하다. 그럼에도 그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사람은 단연 비틀즈란다. 그런데도 비틀즈의 곡으로 윤효간의 곡을 연주하고 있다. 그 다음부터는 다른 해석이 필요 없다. 그의 말대로 누구의 곡이건 그건 윤효간의 음악이 되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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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은 음악과 말이 어우러진다. 윤효간은 아티스트이면서 말꾼이다. 음악은 손과 주먹, 다리 그리고 온 몸으로 연주한다. 영혼으로 연주하는 아티스트라면 설명이 될른지 모르겠다. 영혼으로 음악을 만드는 윤효간, 건반을 두두릴땐 자기만의 음악을 만드는 아티스트이다. 그러다 손이 건반을 떠나 마이크를 잡는 순간 그는 말꾼이 된다. 사람을 만나는 말, 사람을 그리워하는 말, 사람을 세우는 말, 그리고 웃기는 말(유머)을 한다. 그의 말 속에는 따스함이 있다. 삶을 말할 때, 지나온 시간들을 말할 때, 아이들에게 다름의 꿈을 심어 줄때 그는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 꿈을 파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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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요를 좋아하는 사람 윤효간, 동요를 불렀다. 공연장에서 해외 동포앞에서 그리고 클래식의 본고장 유럽에서 당당히 동요를 연주하고 부른다. ‘엄마야 누나야’, ‘오빠 생각’을 연주할 때, 시간은 저만치 뒤를 돌아다본다. 세월을 넘어선 우리 마음의 코드, ‘가족 그리고 엄마’는 그래서 뭉클하다. 이쯤에서 눈물을 흘린다 해도 아무도 나무라지 않는다. 누구에게나 어린 시절, 오빠, 누나 그리고 엄마가 있다.
그는 아름다운 사람을 연주하고 싶어 했고 연주한다. 그의 연주와 노래에는 그렇게 애잔한 삶이 있고, 그 이야기는 아름답다. 감동은 거저 오는 것이 아니다. 가슴으로 읽는 삶이 그의 연주와 노래에 스며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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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에 관객과 함께 하는 시간이 있다. 이런저런 핑계(?)를 붙여 사람들을 불러낸다.
그리곤 갖가지 선물을 준다. 공연초대권, 헬스회원권, 책, 여성 생리대까지.... 즐겁다. 유쾌하다.

예리가 가장 나이어린 관객으로 불려나갔다. 윤효간 사진, 공연초대권, 음료권까지 푸짐하게 받았다. 쑥스러워 하면서도 자리로 돌아와선 얼굴이 확 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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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은 마지막으로 흐른다. 계속되는 연주가 가슴에 젖어든다. 어떤 곡인지는 알 수 가 없다. 손 끝으로 이루어지던 연주가
모든 건반을 두드리는 열정적인 연주로 바뀐다. 그러다 주먹을 이용해 저음부터 고음까지 때려댄다. 그 속에 기막힌 어울림이 있다면 믿어지는가.

그 다음에는 아찔하다. 식지 않은 울림이 계속되는 데 연하게 건반을 두드린다. 아직 남아 있는 울림과 다시 시작하는 작은 소리의 하모니란 끔찍하다. 곡이 끝날 때까지 큰 건반의 울림은 가시지 않는다. 계속될 리가 없는 소리가 들리는 것이다.

윤효간 그가 말한 대로, 들리지 않는 소리와 들리는 소리의 조화, 어둠 속에서만 들을 수 있는 소리, 건반을 두드리는 그 자리에서만 들을 수 있는 소리인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공연은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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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효간은 독일로 갈 계획을 가지고 있다. 빡빡한 일정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을 잊을 수 없어서란다. 오래 전 60년 대 말 경제 발전기에 이 땅을 떠나 외로이 살아가는 교민들의 눈물을 보았기 때문이란다. 그들에게 동요를 들려주고 싶고, 그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서란다. 그래서 아름다운 사람이다.  

나오다보니 사진들이 많이 붙어 있다.

공연을 보고 난 후의 후기들도 빽빽하다. 윤효간의 삶과 작품을 그러내는 사진들을 한 장~~

그는 그렇게 길 위에서 들에서 바다에서 카페에서 피아노를 치고 아코디언을 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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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그의 공연은 이 공연장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닐런지 모른다. 공장에서 찍어낸 판박이 삶을 미친듯이 살아가지 않는다면, 주위를 돌아볼 줄 알고 자연의 숨을 쉴 그런 여유를 갖는다면, 그의 연주는 내 삶에서도 울릴지 모른다는 생각이 스친다. 그가 연주했던 길, 바다, 카페, 들.. 어디에서든 우리는 윤효간을 만날 수 있다.

Posted by 우리예리